일방적인 기억과 달아난 미래
락다운 이후의 일기.
1.일방적인 기억
오랫동안 찾아헤매던 중학교 친구에게 메일이 왔다.
올해 첫번째 버킷리스트를 이룬 것인데, 친구가 1년 전 대학신문에 기고한 칼럼 밑에 내 연락처를 남겨두면서도 에이 이걸 어떻게 발견해 하면서 잊고지냈다. 메일함을 열 때마다 혹시 하던 마음도 수명을 다했는데, 엊그제 전화번호와 함께 제발 연락달라는 메일이 와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하나 걱정했던 것은 내가 친구를 찾으려는 이유가 나의 일방적인 기억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모두에게 똑같이 중요할 수 없고, 나만해도 살면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중에서 기억 할 수 있는, 혹은 기억할만큼 의미를 두는 사람은 소수이다. 특히나 초등학교, 중학교는 더 그렇다. 그렇기에 괜찮다면 연락을 줄 수있냐는 말과 함께 혹시 연락을 주지않더라도 괜찮고 잘 지내고있다고 생각하겠단 말을 덧붙여 적었었다.
그 친구에겐 내가 같은 반이었던 어떤애1 일 수 있으니까. 그런데 느낌표를 채워가며 메일이나 문자 뭐든 좋으니 연락달라는 답을 받으니 괜히 감동이었다. 약간 꿈꾸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카톡으로 서먹하지만 반가운 안부를 나누었는데 친구가 찾아주어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나 잘했다 생각했다.
시간을 역행하는 일이 SF적인 상상력이라면, 옛 인연을 다시 현재로 끌어오는 일이 그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나는 독일에 살면서 예술사를 공부하고있고, 친구는 심리학 박사를 준비하며 결혼을 앞두고 있는, 두 열여섯과는 완전히 다른 두 스물일곱이 되었지만 나는 그렇게 자란 그 아이가 그 아이답다 생각했고, 그 친구도 한국대학을 중퇴하고 무작정 독일로 유학간 나를 보고 나 다운 선택을 했다고 했다.
그게 나답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그렇게 들으니 그랬다. 함께 보냈던 시간은 이곳저곳 찢겨 몇가지 단편으로만 남아있겠지만, 서로가 갖고있는 일방적인 기억을 맞추다보면 각자가 잊고있던걸 알려줄 수 있다.
과거의 누군가를 다시 찾는다는게 나한테도 처음이자 다시하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백번을 생각해도 잘한 일이다.
2.달아난 미래
샤워하는동안 틀어놓은 유튜브 뮤직에서 랜덤으로 Life goes on 이 흘러나왔다.
작년 이맘때엔 어딘가로 흐르고 있을거라는 삶이 나에게만 그저 멈춰있는 것처럼 보여 괴로웠다. 락다운으로 닫힌 방 안에서는 온통 견디는 일 뿐이었다. 닫힌게 문만은 아니었다.
미래로 달아나자 라는 노랫말에서 간신히 위안을 찾았었는데, 1년이 지난 지금 그 날의 내가 달아난 미래가 여기일까 생각했다.
여기라면 나쁘지않은데? 그렇게 생각 할 수 있어 조금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