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여름으로부터 적힌 일기.
Würzburg에서 무차별 칼부림으로 여럿 사망했다는 뉴스가 그 시작이었다. 그 작은 마을에서 사람의 죽음은 내가 자주 걷던 길 곳곳에 놓여있었다. 무게로 잴 수도 없는 것이 타인의 손끝에서 가볍게 사라지는걸 보며 비탄했다. 아직 그 곳에 살고있는 친구에게 급하게 안부를 물었고 우리는 우리가 그 곳을 얼마나 자주 걸었는지, 지나쳤는지, 머물렀는지 기억해냈다. 무섭고 슬픈일이야 하며 우리는 그 일로부터 우리를 간신히 분리해내었고, 모쪼록 조심해 라는 말로 안녕을 비는 수 밖에는 없었다. 외롭고 괴로웠던 날을 보낸 마을이었지만 당장이라도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가 마을 곳곳을 위로하고싶었다.
그리고 한 주 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숨처럼 몸을 들락날락했다. 가족들이 다함께 대구로 내려간다는 것, 그곳의 어느병원에서 장을 치룬다는 것, 발인은 언제라는 것을 메세지창을 창문삼아 엿보는 듯 했다. 나도 거기 있어야하는데. 타국에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을 의미한다는걸 모질게 실감한다.
그리고 두 주 후에 이 나라의 서쪽에선 잔인한 물난리로 귀한 것들이 수도없이 많이 사라졌고, 나는 겨우 작은돈 몇 유로를 기부할 뿐이었다.
후덥지근한 수증기로 가득채운 돔 속에 가만히 서있는 듯 하다. 그 안에서 그 밖을 지켜보며, 나는 저 밖에 나갈 수 없다는 자괴감과 이 안에 있어 다행이라는 괘씸한 안도감이 뒤섞인다. 어렵고 나쁘고 지긋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