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고 말 이에게 구태여 칭찬을 쥐어주는 일
베를린에서 파트 타이머로서 알바를 시작했을 때에 가장 낯설게 느껴졌던 것은 자꾸만 툭툭 날아오는 손님들의 칭찬이었다. 바지가 예쁘다는둥, 가디건이 참 예쁘다는 둥, 피부가 참 좋아보인다는둥. 이 사람들 왜이러지 싶었다. 나에 대해 뭘 알아. 당황스러운 맘은 잠깐이었고 내가 제법 괜찮아 보이나 남몰래 집 가는길에 으쓱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점차 이건 함정 같다 여겼다. 가까운 사이에서 건네는 칭찬에도 '에이, 아니에요' 하며 도로 그들의 손에 쥐어준다거나, 그 칭찬이 내게 적격하지 않다는 듯 변명을 하던 습관이 몸에 베어있었다. 하물며 이 바글바글한 매장 속에서 잠깐 지나치고 말 중년의 독일인 아주머니에게로부터, 어린 아이들로부터 듣는 고운 말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이란 내가 배운 적 없던 것이다. 칭찬을 제대로 받을줄 몰라 때때로 맘속에서 그들을 'Asian Fever(동양인들에게 환상/페티시를 가지고 있는)'로 몰아세웠다.
모르는 이에게 칭찬을 건네고, 받는다는게 사실 그렇게 지구의 온 에너지를 끌어와야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이곳에서 파트타이머로 일하며 배웠다. 어학원과 대학교 안에서와는 비교할 수 없이 다양한 사람과 스치고, 피할 곳 없이 크고 작은 대화들을 해보는 일에 익숙해지고나니 칭찬은 받는 쪽도 그렇다지만, 실은 쥐어주는 쪽에서 더 기분좋은 일이라는 것을.
나의 실험은 계산대에서부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무렵이었던 때로, 어떻게든 다들 선물을 골라내고자 바글바글 모인 날이었다. 이 큰 매장 안에 어깨를 맞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코가 깨질듯 발갛던 날. 이미 손님들의 겨울짜증에 익숙해져 그들의 부정적인 감정에 아무런 치명상도 입지 않게 된지 오래된 때였다. '그래 그래 짜증나지 그래그래'하는 맘으로 한명 한명 맞이할 줄 알게된 날들이었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선물은 그렇게나 정성스레 고르면서도, 종종 이 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이들이란걸 까먹는 듯 하다.)
한 손님이 자기 몸만한 머플러를 칭칭 동여매고 이제서야 간신히 자기 차례가 왔음에 불평하듯 보란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근데 그 와중에 머플러가 참 빵실하고 예뻤다. 눈치없이 꼭 말하고 싶었다. 그 머플러가 참 예쁘다고. 난 이제 칭찬에 놀라지 않는 사람이 되었는데 그럼 이때쯤 내가 칭찬을 건네는 사람이 되면 어떨까, 그 결과값이 궁금했던 참이었다. 손님은 'Bitte?(뭐라고?)' 라며 눈을 날카롭게 빛냈다. 컴플레인을 걸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은 싸울 준비도 되어있는듯 했다. 다시 한번 또박또박 '멋진 머플러를 하셨어요.' 라고 이야기했다.
사람이란 참 신기하고 신비하다. 자신에게 날아온 말이 선전포고가 아닌 안전지대라는 것을 이해하자마자, 말그대로 '하자마자' 손님의 얼어있던 미간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 과장을 보태지않고 묘사하자면, 그 얼굴에 한순간 온기가 돌았고 조금씩 따뜻한 다홍빛으로 물들었다. 여기서 '물들었다'는 표현은 비유가 아님을 맹세한다. 사람의 표정이 이다지도 빠르고 풍부하단걸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그 문장 하나에 그녀는 모든 가드를 내렸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며 이 머플러를 구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털어놨다. 내 별것아닌 초라한 칭찬이 그녀의 그 생고생을 자랑스럽게 만든듯 했다. 떠나는 얼굴은 여전히 붉었고 언뜻 행복해보였다.
이건 이런 힘을 가졌구나. 잘 아는 사람에게 근거를 들어 꿋꿋이 설득하듯 건네는 칭찬만큼이나,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볍고 기쁘게 쥐어줄 수 있는 말들이 있구나. 이 곳은 그런 것들을 아주 어렸을때부터 배우며 그런 것들을 줄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는구나. 그래서 그 사람들은 굳이굳이 안해도 될 말들을 주고 갔구나.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구나. 해보고나니 비로소 받을 줄 알게되었다.
그제서야 온전히 지나쳐온 말들에게로 돌아가 제대로 예뻐해 줄 수 있게 되었다. 나에 대해 뭘 몰라도 할 수 있는 말들. 지나칠 것으로 반드시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 기대없이 줄 수 있고 부담없이 받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위해 다음에도 예쁜 바지나 가디건을 입고와야할 필요없이, 그냥 그 순간 그 곳에서만 발생하고 말 것들. 사람은 사라지지만 온기는 남는 언어언어들. 의심 할 여지없이 나의 무너질뻔했던 하루하루를 어쩌다 지켜주었던. 작고 사소하고 강하고 랜덤했던 것들.
그리하여 나도 손님의 종이봉투 안에 캔디 하나 넣어주듯 내가 발견한 그들의 멋짐을 쥐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건 이제와 나의 대단한 자부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