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도 사랑 곁에서 (1)

리투아니아, 아일랜드, 암스테르담, 그리고 베를린

by domado



"I don't know nothing about you."


나는 너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르떼의 첫 인삿말이었다. (참고로, 르떼는 내가 살짝 바꿔만든 이름이다.) 백인들로 둘러싸인 나의 두번째 파트타임 잡인 북유럽식 카페에서, 그 아이는 그중에서도 가장 흰 피부를 가진 북유럽 사람이었다. 햇빛에 그을린 밀밭같은 금발을 지닌 내 또래의 리투아니아 사람. 북유럽 사람들은 역시 저렇게 화려한 금발을 가졌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아이의 원래 머리색이 내 머리보다도 진한 흑갈색이란건 나중에야 알았다.


르떼의 '너를 모른다' 라는 말은, 마치 '네 삶의 이력서를 한번 흝어봐' 라는 말로 들렸다. 갑자기 시작된 인터뷰에 짧은 영어로 횡설수설 늘어놓기 시작했다. 뭐라도 말해야해. 독일어로는 해봤어도 영어로는 해본 적 없는데. 그래도 해야해.


"아, 난 독일어를 배우기 위해 베를린에 처음 왔었어. 뷔어츠부르크라는 남부 도시에서도 살았어.

맞다, 이전엔 한국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하다 그만뒀고 베를린 대학교에서 동양예술사를 전공해."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르떼는, 내 불분명한 악센트와 발음, 이상한 문장구성에 못알아듣겠단듯 숨기지 못하고 간헐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 찌푸림은 의지와는 관계없는 반사반응이란걸 나 또한 이해한다. 그게 그 새로운 동료와의 첫만남이었다. 솔직해지자면, 좋지 않았다. 심지어는 싫었다.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 그랬다. 내게 수치심을 주려던건 아니었겠으나 르떼가 던져버린 1분짜리 미니 발표를 끝낸 후 내 마음은 처참했기 때문에. 언어의 장벽은 누가보나 두터웠고, 그 사실을 너도 알고 나도 알았다.


몇 번의 시도가 더 있었으나 그 아이도 나를, 나도 그 아이를 이해하지 못했음으로 우리는 접어두기로 맘 먹었다. 나는 영어를 충분히 잘하지 못해서 대화가 안되는 사람이 되기보단, 르떼같은 타입의 사람에게 관심도 없고 냉담한 사람인 척 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구태여 그 아이에게만 문장을 줄였다. 그게 덜 부끄러웠으니까.





'무슨 일을 하고 싶은거야?' '넌 아직도 모든 일을 네가 다 하고싶은거야?'


앞선 편에서 적었던 일화에 담긴 유릿조각같은 이런 질문들 또한 다 르떼로부터 비롯했다.

르떼는 여러가지 일이 섞여있는 카페에서 오로지 커피머신만을 도맡고 싶어했다. 형평성을 위해 매니저가 르떼에게 샌드위치를 만들라고 하거나, 프렙 준비를 시키면, 어김없이 말도 안되는 모양으로 과일을 썰어두거나 달콤한 빵 위에 소금을 잔뜩 뿌려두거나 하는 식이었다. 그때마다 르떼는 '거봐' 하며 도망치듯 커피머신으로 달아났다.

그 아이는 사람을 좋아했고, 그래서 사람에게 미움받는걸 싫어했다. ‘love' 라는 말을 달고사며 사랑만을 주고 사랑만을 받고싶어했다.


그래서 그랬나.

커핏잔이나 그릇을 몇개는 깨야 진정한 카페 멤버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이 곳에서도, 르떼는 뭐 하나 깨질때마다 아주 과민해졌다. 뾰족한 접시조각을 정신없이 손으로 집기에 다칠까 걱정돼서 청소도구를 가져다 주면


'Don't touch! It's all my mess.'

건들지마. 내가 잘못한거잖아. 라며 말도 못 붙일 정도로 신경과 말투를 곤두세웠다.


All My Mess. 의역없이 보자면, 모든 나의 엉망진창.

그 예민함이 마치 '제발 나의 엉망진창을 들여다보지마' 라는 말로 들렸다. 그렇게 몇번의 호의와 거절을 반복하는 동안의 행간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점점 어색해졌고, 멀어졌다. 그게 편했다. 나또한 스케쥴 표를 보고 르떼와 단둘이 일 하는 날엔 한숨을 푹푹 쉬며 출근했다.





그래서 르떼를 참 좋아했다. 여기서 '그래서' 라는 말은, 내가 그 모든 과민함과 못된 질문들을 앞지르는 것, 그러니까 사랑에 뿌리를 두고자 하는 마음에 언제나 가산점을 주는 사람인 탓이다. 사람은 한없이 약해서, 때때로 날 세우고 울고 속이고 숨지만 그 곁에 사랑을 두기만 한다면. 르떼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물며 또 그 아이는 책과 고양이를 사랑했다. 내겐 도통 나쁜 사람일리 없었다.


르떼는 자신에게만 단답을 건네는 내가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나또한 내 엉망을, 그러니까 내 엉망진창인 영어를 들키기엔 자존심이 지독했기에, 그냥 그렇게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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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어느 날 휴게실에서 무심코 내다 본 창문 너머로 출근 전 벤치에 앉아 햇빛을 받으며 책을 읽는 르떼를 보았다. 세상 모든 작고 큰 자극들을 마치 피부가 없는 사람처럼 날 것으로 감각하던 르떼는, 책 속에서만 오롯이 안정을 찾고있는 듯 했다. 머리카락이 여름해에 반사돼 반짝반짝 눈부셨다. 그 안에 그 아이가 떠나온 리투아니아와 아일랜드, 학교를 다녔다던 암스테르담, 그리고 마침내 집으로 느껴진다던 베를린의 이야기가 비단실로 짜낸 태피스트리처럼 섬세하고 거칠게 엮여있는듯 했다.



베를린 뉴비인 르떼가 한번은 (언어의 장벽을 넘어보고자 노력하던 시기에) 고인물인 내게 여전히 이 곳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이런저런 힘든 일이 있었지만, 그렇다’ 라고 답하며, 너는 어때? 되물었다.


"난 베를린 사랑해. 이제서야 집처럼 느껴지는 도시야. 베를린은 숨기는게 없잖아. 냄새도 나고, 벌거벗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고. 다들 엉망이잖아. 난 그게 참 좋더라."


숨기고 싶다는 말은, 사실 숨김 없이 사랑받고 싶다는 말의 동의어일지도 모른다는걸, 르떼를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숨겨야할게 많았던 어느 집으로부터, 눈떠보니 의지와는 별개로 집 이라고 정해진 어느 곳으로부터 떠나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새로운 집을 찾아 헤매왔을지 모르겠다 생각했다.


르떼는 모두 다 같은 사람인데도 누군가는 비자가 있어야만 이 땅에서 일하고 공부 할 수 있도록 '합법적으로' 살아갈 자격을 얻고, 반면 자신은 유럽연합에 속한 국가의 국민이라는 이유로 무언가의 허가없이도 독일에 그냥 비행기 한번 타고 날아와 살 수 있다는 사실이 웃기다고 했다.


그렇게 선별되고 구분되어지는 모든 것들을 부당하다 여겼다. 그래서 그런지 르떼는 입버릇처럼 'Unfair' 혹은 'Fair enough' 라는 말로 추임새를 넣었다. 자신이 많이 들어온 말들, 혹은 여러 외부의 자극과 타협하고 겨루느라 스스로의 내면으로부터 탄생한 말들은 온몸을 피처럼 돌다 문득 입 밖으로 나오는 법인데. 그 아이는 그렇게 엉망과 비엉망을 구분짓는, 르떼에게 ‘불공평’한 곳으로부터 달아났는지 모르겠다.





르떼의 예민함과 나의 부끄러움이 굉음을 내던 몇몇날들을 거쳐 침묵의 시기를 지내오던 우리를 다시 시도해보게 만든건, 어느날 나눈 짧은 인삿말 덕이었다.


카페 특성상 모두 다른 출퇴근 시간의 근무표를 배정받는데, 그 날 나는 오프닝 시프트를 맡았기에 다른 직원들을 두고 가장 먼저 퇴근하는 일정이었다. 여느날처럼 짐을 다 챙기고 내려와 가기전에 남은 동료들과 한명씩 포옹하며 '오늘 화이팅' '고마워 다음에 보자' 라는 인삿말을 건네는데, 마지막 포옹의 차례가 르떼였다.


그날은 뭔가 유달리 지쳐보이는, 그래서 유달리 책에 집착하던 르떼를 안으며 '다음에 보자, 나 너 좋아해' 라고 말했다. 생각보다도 빠르게 내 입이 먼저 툭 건넨 말이었으나, 르떼는 '날 싫어하지 않는다고?' 라는 듯이 토끼 눈으로 웃었다.





그 후 다음 근무가 겹치던 날, 돌연 르떼가 내게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주 드문 일이다.)


"내가 고양이들 찍어왔어"


라고 말하며 함께 살고있는 고양이들의 사진을 보여줬다. 예전에, 그러니까 침묵의 시대가 도래하기 이전에, 르떼가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말에 사진을 보여달라 했었다. 한참 사진첩을 뒤척이던 르떼는 사진을 찾을 수 없다며 그렇게 어색한 대화를 끝냈다.


르떼가 새로이 가지고 온 사진들은 누가봐도 고양이를 많이 찍어본적 없는 사람처럼, 고양이의 얼굴만을 어찌저찌 잔뜩 클로즈업 해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고양이의 눈동자 안엔 사진을 어떻게든 담아보고자 노력중인 르떼의 엉거주춤한 모습이 실크커튼 뒤 실루엣처럼 흐릿하게 담겨있었다.


너도 사람을 쉽게 포기하진 않는구나?

나도 그랬다. 그날부터 대화를 길게 하지 않아도(못해도) 동료로서 혹은 친구로서 마음의 거리는 좁혀지는 것 처럼 보였다. 그렇게 여름의 피날레를 위한 직원들끼리의 섬머파티가 다가오고 있었다.



-(2)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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