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라면 개구리인거지요

오독되어 좋은 선물들, 찾아 떠나는 마음들

by domado



"말씀해보세요. 이게 무슨 동물일까요?" Sagen Sie mal, Welches Tier ist das?


머리카락이 슈가파우처처럼 희끗 센 중년의 여자가 내 앞에 정중한 말씨로 내민 것은 두가지였다.

삐뚤빼뚤한 것이 제맛인 봉제 손가락 인형, 그리고 이게 무슨 동물일 것 같냐는 물음.


바코드를 스캔하는 기계적인 손을 멈추고 계산대에 드러누운 인형에게로 시선을 낮췄다.

녹색의 무언가. 수제 인형의 묘미는 그게 아주 제멋대로의 형상을 띄고 있는 것에서부터 비롯하기 마련이라지만 어딘가 묘하게 생긴 애였다. 양서류 아니면 파충류? 멀리 보면 공룡까지도 가능한 녀석이었다.


다시 고개를 들어 맞춘 여자의 눈 속이 설레임으로 번뜩였다.


"개..개구리?" F..Frosch?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개구리! 그렇게 보이죠? 그러면 살게요." Frosch! Sieht so aus, oder? Dann nehme ich ihn.

여자는 우리의 의견이 일치해 아주 신이난다는 듯, 핑거스냅을 하며 계산을 위해 카드를 꺼냈다.


"선물인가요?" Ist das ein Geschenk?

"맞아요. 개구리만을 모으는 누군가를 위해 이 박물관섬 전체를 다 돌아다녔어요. 개구리를 찾으려구요."

Ja. Ich habe die ganze Museuminsel durchstöbert. Für jemanden, der immer Frösche sammelt.


고백하자면, 사실 공룡과 더 가까워 보였으나 독일어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개구리라고 답한 것이었다.

그러다 이걸 찾기위해 온 세상을 헤맸다는 노고를 들으니 일순 죄책감이 한 구석에서 소리를 질러댔다.


이렇게 가짜된 마음으로 가짜 개구리를 진짜 개구리 콜렉터에게 선물되어지도록 보낼 수는 없었다.

그건 가짜고, 개구리 콜렉터는 단박에 알아볼지도 몰랐다. 그래서 급하게 덧붙였다.


"아니면..혹시 그게 아닐까요? 그거 있잖아요. 녹색이고.." Oder..könnte er was anderes sein? also, was grünes..

"악어 말씀이신가요?" Ein Krokodil?


악어 말씀은 아니었다만, 아직도 공룡이란 단어가 떠오르지않았다. 일단은 개구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알리는 일이 이 순간의 우선순위였다. 그래서 침을 꼴깍 삼키며 나도 이게 악어같기도 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그건 옆에 따로 있더라구요." Am Anfang dachte ich auch so, aber das war woanders daneben.


아, 있으셨구나. 어쩔 수 없었다.

들키지 말아야한다 가짜 개구리야, 라는 심정으로 들뜬 손에 쥐인 카드로 4,99유로가 계산되는 순간을 지켜보았다.


오독의 크루아상.jpeg



그 인형이 개구리라는 것은, 아마도 베를린 곳곳에서 개구리를 찾느라 감각이 흐려진 그녀의 눈과 내 독일어 이슈가 반죽되어 탄생한 오독의 크루아상이었다.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인형을 선물봉투에 넣고 뒤돌아서는 그녀의 슈가파우더 머리카락에선

좋아하는 이가 좋아할게 분명한 선물을 찾았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에게서만 나오는 설탕같은 행복감이 폴폴 흩날렸다. 아까 그 마음의 한구석에서 가짜 개구리가 '너 정말 그렇게 보낼거냐'고 자꾸만 소리를 질러댔다.


"만약 아니면!" Falls nicht!

막 나서려던 그녀가 다시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만약 개구리가 아니라면, 다시 가지고 오세요. 환불해드릴게요." Falls es kein Frosch ist, bringe Sie es einfach zurück. Wir können Ihnen Ihr Geld zurück.


내 마지막 양심의 개구리가 개굴개굴 울었다.


나에 비해 선물이란 일을 30년은 더 해봤을 듯한 그 중년의 여성은 충분히 다 익어 더할나위 없이 좋을 살구처럼 살풋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괜찮아요. 당신이 개구리라고 했으면, 이제부턴 개구리인거지요."

Alles Gut. Wenn Sie meinen, dass es ein Frosch ist, dann ist es ab jetzt ein Frosch.





그 날 집에 돌아와 3년 전 친언니가 베를린에서 함께 지내다 떠나던 때에 선물로 남기고 갔던 꽃수집용 책을 뒤적였다.


책의 앞부분은 꽃의 종류에 대한 간략한 설명 페이지들로 이루어져있고, 뒷부분부턴 직접 모은 식물이나 꽃들을 말려 붙일 수 있는 빈 페이지들로 이루어진 노트였다. 책이기도, 수첩이기도 한 그것.

나는 그걸 꽃갈피라고 불렀다.


내가 사기엔 꽤나 비싼 탓에 만지작 거리다 내려뒀던 것이었다.

이 도시의 여행객으로 함께했던 언니는 그 모습을 어디 모퉁이에서 지켜보다, 내가 수업을 들으러간 어떤 대낮에 혼자 나와 의미를 알 수 없는 이국의 표지판들을 뚫고 그걸 기어코 구해왔다.




꽃갈피1.jpeg
꽃갈피2.jpeg




나는 그래서 그걸 꽃갈피라고 불렀다.

어느 사랑받는 유명 음반의 이름이기도 했고, 그것이 꽃과 식물의 모음에 대한 책이었던 탓도 있지만.


언니의 시간으로부터 내게 선물되어져 내 방에 머물게 된 순간의 탄생 그 자체가,

어디쯤 와있는지 모르겠는 장편소설 같은 유학생활에서 그 계절에만 피는 꽃으로 가름끈을 만들어두는 일 같았기 때문이다.


그건 순전히 나의 세계를 위한 일이었다.

그 안에 적혀있는 독일어도, 이 기숙사 앞에 핀 꽃의 이름도, 선물을 찾으러 떠난 이는 알 수 없었겠으나

너 여기까지 왔어. 여기까지 읽었어. 너는 이 도시의 꽃과 식물을 좋아한다며. 그래서 샀어. 네게 이걸 선물하고 싶었어. 라는 모든 마음과 말의 함축에 이미 이름과는 상관없는 선물의 심장이 들어있었다. 그래서 내 멋대로 이름 붙여도 괜찮은 것이다.




요 웅장한 그리스식 신전같은 미술관에서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라던지, 모네라던지 하는 거대한 이름들을 뚫고 한 모퉁이에서 개구리를 찾아 선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엔, 가짜 개구리에도 개구리를 모으는 사람이 기뻐하길 바라는 진짜 개구리의 마음이 담겨있다.


그런 마음을 목격할 때마다 나는 다시 꽃갈피를 만들어준 언니와, 언니의 마음과, 언니와 나의 가을로 돌아가 숨을 쉰다. 사랑의 아가미는 그런 순간들에 붙어있는 탓에.



그래서 개구리라면 개구리이다. 꽃갈피라면 꽃갈피인 것이다.

그렇게 오독되니 더욱이 좋다.






이전 07화엉망진창도 사랑 곁에서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