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가수 2
주차선에 차를 똑바로 세우려고 차창을 내렸다가 나 혼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내 차 안에 갇혀있어야 할 노래가 지하 주차장에 쩌렁쩌렁 울려퍼지고 말았으니, 보는 사람도, 들은 사람도 없는데, 혼자 은밀하고 '부끄러운 취향'을 대면하고 말았다. 얼른 다른 음악을 고르고, 이어폰을 끼고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 태연자약하니 차에서 내려 집으로 올라갔다. 어젯밤에도 아이들을 억지로 잠자리에 눕히고, 설거지를 끝낸 후 모든 조건들, 예를 들면 텔레비전 보면서 뒤적일 시사 잡지 1권과 심심할 때 씹어먹을 방울 토마토, 통째로 퍼먹을 하겐다즈 바닐라 아이스크림 등을 갖추고 시간에 맞춰 앉았다.
시작은 엄마였다. 2월 중, 갈비뼈과 무릎을 심하게 다친 엄마가 치료를 위해 우리집 인근에 사는 여동생 집에 머물게 되면서 엄마를 찾는 일이 잦아졌다. 점심이라도 같이 하려고 들릴 때마다 엄마는 조카방에 자리를 펴고 누워서는 '바램', '60대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 '보랏빛 엽서'를 무한 반복으로 들으며 방에서 나오시지도 않았다. "젊은애 슈트발에 반했지?"라고 짖궂게 놀리면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얘 노래는 다르다", "난 원래 트로트 안 듣는다"
트로트는 '늙은', '후진', '싸구려', '통속'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양식이다. 트로트를 폄하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라, 현재 우리에게 유통되고 있는 트로트의 이미지가 사실 그렇다는 말인데, 내가 임영웅의 '배신자'를 차에서 혼자 크게 틀어놓고 있다는 것을 들키고 싶어 하지는 않는 것이나, '원래 트로트는 안 듣는다'는 엄마의 말이나, 모두 트로트의 이러한 일반적인 인식을 담고 있는 행동이자 표현이다. 일요일 12시면 '전국노래자랑'을 애청한다고 했을 때, 내 주변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너 대개 웃긴다', '정말이냐?' 뭐 이런 것이었는데, 이러한 나의 취향을 드러내는 것은 상대가 나를 '후진', '시골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나를 내리깍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만 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전국노래자랑'을 시청하면서 '임영웅'과 '영탁'의 노래를 즐겨 듣는 것은 단지 기존 이미지와의 불일치에서 유발된 신선함과 독특한 개성으로 받아들여질 때에만 공개될 수 있는 것이다. 화사의 색색깔 매니큐어가 칠해진 긴 손톱과 족발을 집어들드는 행위의 불협화음이 일으키는 새로움과 비슷하다고 하면 너무 과한 표현일까?
트로트가 출발부터 '늙은', '후진' 양식이었던 것은 아니다. 흥'. '에헤야'와 같은 조흥구를 사용하여 낙관적이고 전원적인 정서를 노래한 신민요 달리 1930년대 트로트는 '유행가'로서 단형의 정제적 형식 안에서 우울하고, 비극적인 정서를 도시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노래했다
'네오싸인 빗갈에도 맘이상하
야 울며울며 이한밤을 내가샙니다'( '님 그리는 눈물' -김안서 작사)
'사랑의 애닮흠을 죽음에두리 모든 것 잇고잇고 내홀로가리 사러서 당인안해 못될것이며 죽어서 당신안해 되여지리라'(봉자의 노래')
다시 화합할 가능성이 완전히 봉쇄된 상황, 이 극단적인 상황의 설정이 트로트의 중요한 특징인데, 이것은 그 상황에서 무기력한 자신을 인정함과 동시에 자기 연민을 발생시킨다. 이것이 바로 '최루성 신파 양식'의 특징인 바, 트로트는 신파극과 함께 '신파'의 쌍두마차였던 것이다. 물론 당시에 신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흥'을 담당한 한 축이 있었는데, 바로 '사랑가', '사발가', '신농부가'와 같은 '신민요가 그것이다. 음악적으로는 기존의 잡가적 요소와 새롭게 들어온 요나누끼 음계를 결합한 신민요들은 기존의 유행잡가의 후렴구나 제목, 모티브를 차용하여 향토성과 국토애를 부각하면서 평화롭게 낭만적이었던 과거로 회귀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비록 '신'이라고는 하지만 유행잡가의 양식적 특성을 이어받으면서 '전통적' 이미지로 모양새를 잡아나간다. 원래 '신'이라는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조금 달라진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
한편, 트로트는 '유행곡', '유행가', '유행가곡', '유행소곡'으로 불리면서 콜롬비아, 빅타, 포리돌, 오케, 태평 음반 등에서 음반으로 출시된다.(물론 신민요도 유성기음반으로 많이 나오지만, 그 곡들에게는 '유행'이라는 단어가 붙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유행가로 인식된 트로트의 정서는 '눈물'을 흘리는 행위로 주로 종결된다. 어떤 이는 출구없는 비탄과 슬픔의 정서를 식민지인들의 자기소모적인 정서로 읽기도 하지만 18세기 브루주아들이 귀족적 정서와 대비되는 자신들만의 정서로 '감상성'을 부각시킨 것처럼 어쩌면 트로트의 감상성은 '함께 부르는 노래'에서 이제 '방구석에 박혀 홀로 부르는 노래'로 변화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트로트'는 요나누끼 단음계와 유성기 음반이라는 근대 문물을 통해 대중성을 획득한 '최첨단'의 노래였으며, 왕수복, 선우일선, 김복희와 같이 전통 예기에 익숙한 가무학교 출신 여성들이 그 선두에서 이끌어 나온 양식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지난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노래라고도 할 수 있다.
100여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트로트도 다양하게 분기되었지만, 트로트가 출발할 때 가졌던 강한 감상성만은 여전하다. 그 감상성이 한 때는 세련된 것으로 이제는 좀 쿨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니,'배신자'라고 울부짖는 노래에 감동하는 나의 쿨하지 못한 감성을 들키기 싫었나보다. 그래도 여전히 샤이하게, 트로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