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가수 1
강백수를 좋아한다. 보름 전에 마련한 아지트(아지트라고 해봐야 동네 독서실)에서 새로 산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강백수의 '감자탕'과 '울산'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일을 하려니, 자꾸 내 마음은 내가 사랑한 가수들에게로 흐른다. 흐르려는 마음을 잡아둘 힘도 없으니, 일단 흐르게 둬본다.
어버이날이 되면, 라디오에는 거의 나오지 않던 강백수의 노래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타임머신'이라는 웃픈 노래야말로, 어버이날을 계기로 '계기학습'하듯 듣기에 아주 적절한 노래다. 나 역시 운전을 하다가 "아버지 6년 후에 우리나라 망해요", "제발 저를 너무 믿고 살지 말아요"라고 말하는 "못난 아들"의 고백을 듣고는 볼륨을 높이고, 귀를 쫑긋 세웠다. "2004년 엄마를 떠나보낸 우리는 엄마가 너무 그리워요 엄마가 좋아하던 오뎅이랑 쫄면을 먹을 때면 내 가슴은 무너져요"라는 2절에서는 내 마음도 무너져내렸다. 왜 육회도, 킹크랩도 아닌 오뎅과 쫄면이란 말인가.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이 노래 가사를 검색해서, 가수 이름을 알아낸 후, 2주 이상을 그때까지 나온 그의 노래와 그가 한 인터뷰, 그가 낸 책까지 모조리 다 뒤져서 듣고 읽었다. '사축일기'라는 글은 꽤 오래 직장생활을 한 내게는 밋밋하게 다가왔지만, "왜?라고 물었을 때, 그냥이라고 답하는 것은 게으름의 소산"이라는 의미로 한 인터뷰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또 강백수라는 이름은 '공무도하가'의 '백수광부'에서 따왔다고 했다. 시인 허수경의 팬이었던 나에게 그의 이 작명은 이 사람을 좋아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내가 좋아한 사람들은 모두 '공무도하가'와 '백수광부'를 좋아한다.
다 저녁 환한 저녁
文字도 없이 文書도 없이
滅조차 적적한 곳으로
화엄도 도솔도 없이 문명의 바깥으로
無望 속으로
환하게
-허수경, '백수광부'<혼자 가는 먼 집>, 1992
나는 그의 노래가 '공무도하가'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공무도하가'라는 노랫말은 그 노랫말을 둘러싼 이야기와 떨어질 수 없다. 배경설화에 둘러 쌓이기는 향가도 마찬가지지만, 향가는 '공무도하가'에 비해 시로서의 독립성을 강하게 지닌다. 월명사가 요절한 누이에게 제를 지내면서 '제망매가'를 불렀다는 사실을 몰라도, 10줄짜리 노랫말만으로도 충분히 '누이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종교적으로 승화'하려는 시적 화자의 정서를 납득할 수 있다. '죽음', '종교'라는 키워드를 생성하는 데에 배경설화는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아니다.
그런데 '공무도하가'는 배경설화 속의 일부분으로 자리한다. 강을 건너는 백수광부를 뒤쫓는 아내의 만류의 말이 '공무도하가'다. '공무도하가'를 들으면서 백수광부는 희뿌연 새벽 속으로, 강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 '연극'을 바라보는 관객 '곽리자고'가 있고, 이 관객은 자신이 본 '연극'을 자신의 아내 '여용'에게 전하고, '여용'은 또 동네 아낙에게 전하고, 전하고, 전하고, 이렇게 전해져서 '조선진졸'에서 한 여인이 부른 '공무도하가 '는 문헌에 정착한다. '공부도하가'의 신비성, 수 천년이 흐른 뒤에 허수경을, 강백수를, 이상은을 매료시킨 그 신비성은 '공무도하가'라는 극적 독백을 둘러싼 겹겹의 이야기들에서 발생한다. '술병을 차고, 흰머리를 산발한 사내(백수광부)'와 새벽녘 조선진졸의 희붐함이 없었다면, ''공무도하, 공경도하, 타하이사, 당내공하' 한역된 이 16글자에서 우리는 '문명의 바깥으로' 의 세계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이런 점에서, (여백이 많기는 해도) 자신이 엮은 서사의 틀 안에서 불리는 극적독백, 이를 테면 '울산에 살던, 쫄면과 오뎅을 좋아하던 뒤통수가 예쁜 여인과 성실한 남자가 만나 아들을 낳은 후, 서울로 이주해서 서울에서 아들을 키운다. 큰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꿈인 아들은 나름 예의 바르고 공부도 잘해서 고생이 고생같지 않았는데.......그놈이 하헌재라는 부잣집 아들을 만나 -----" 이 서사의 맥락 위에서 각 노래들은 극적 독백처럼 터져나온다는 점에서, '공무도하가 '와 같다. 그 극적독백은 그것을 둘러싼 서사의 원심력과 구심력의 긴장 위에서 나를 기다린다. 이때 원심력은 당연히 그것을 나의 서사 안으로 끌어오려는 나의 힘이겠지.
너무 길어졌다.
2018년 봄과 가을, 차 안에서 그와 함께 살았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