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들과 줌으로 수업을 할 기회가 생겼다. 이야기 끝에 '행복'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이제 열여섯, 그들에게 행복은 먼 미래 어느 시점에, 먼 곳에 있을지 모르겠다. 새로운 세상으로 연결된 문을 열고 가면, 짠하고 나타나는 것, 그곳은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의 눅눅하고 습한 공기와는 사뭇 다른 향기가 온몸을 감싸는 곳에 습기처럼 흐릿하게 떠 있는 무엇인 것 같다. 그곳에 어떻게 닿을 수 있을지, 혹은 그런 곳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열여섯이 생각하는 행복이란 그런 것이다. 막연하여 손에 잡히지 않을 꿈을 꾸어도 부끄럽지 않은 나이다. 오히려 맘껏 꾸어야 할 나이다. 그런 그들에게 오늘의 하루하루가 모여 너의 행복을 만들 것이라는, 얘기가 귀에 들오기나 할까? 성실하고 충만한 일상이 곧 행복이라는, 그러므로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현 상태이자, 적극적인 행함 속에 있는 것이라는 말이 그들에게는 내일 제시간에 일어나 교복 예쁘게 입고, 학교 잘 가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소리로만 들릴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이 좀 더 감각적으로 예민하고 감정적으로 풍부해지기를 바란다. 자신의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과 감정을 향유할 수 있는 이가 누리는 최고의 행복과 사치를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어쩌면 그들도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타지와 미세한 현실의 조각들,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 정신없이 흔들리는 나이가 열여섯일 테니까.
지난 금요일, 오랜만에 행복했다.
비가 내리 전 그윽한 습기가 온 생명에 들러붙어 있는 밤이었다. 플로깅을 해서 인증샷을 올리는 과제 제출이 다급해던 아들이 플로깅 따위를 왜 해야 하냐고 투덜댔다. 이미 밤 10시가 가까워진 시각에 아들에게 쓰레기봉투를 들고 같이 산책을 가자고 꼬셔 우리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았다. 산비탈을 따라 세워진 단지 맨 아래 평지에 자리한 동에 살고 있어 산비탈을 따라 줄지어 선 윗동까지 올라갈 일이 없었던 탓에 생판 새로운 곳을 산책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여러 번 걸었던 길이다. 하지만 이제 나보다 키가 커진 아들이 옆에서 재잘되고,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가 입으로는 투덜거리면서도 허리 숙여 버려진 쓰레기를 열심히 줍고 있어서인지, 그 길은 처음 와 본 길마냥 새로웠다. 단지 끝까지 올라온 후 이어진 길을 따라 산허리에 있는 농구장까지 올라갔다. 달은 휘영청 밝고, 개구리 소리, 온갖 풀벌레 소리가 농구코드를 가득 채웠다. 농구하다가 맨날 생수통 버리고 가던 사람이 왜 오늘은 생수통 하나 안 버렸냐며 투덜대던 아들이 갑자기
"엄마, 나는 이 소리가 너무 좋아. 막 설레."
"개구리 소리가?"
"아니, 여기 와봐. 이 소리"
왁자지껄한 개구리 소리에 주눅 들지 않고, 길가 풀섶에서 섬세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풀벌레.
쓰레기를 줍다가 풀벌레 소리를 듣고 막 설렌다...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