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 생명을 논하다>
이미 내 과거는
살짝 들려줬잖아.
그런데도,
더 알고 싶은 거야?
참, 남의 이야기를
그렇게 좋아해서 되겠어?
물론 나도 좋아하지만...
그건 직업이니까 예외잖아.
내 복장을 보고서
알아차린 사람도 있을 거고
흑사병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어라,
시대가 안 맞는데요?
라고 내게 말하겠지.
어쩌겠어,
이미지가 이렇게 만들었으니
아마 이걸 쓰는 놈도
의도적으로 그랬을 거야.
임팩트가 크지만
결국 무서운 존재잖아?
그래도 이 복장이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이 사람부터 데려갔어.
내 직업 정신이
이렇게나 투철한데
날 무서운 존재로
만든 건 상상력의 한계지.
아무튼,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이 속담 알지?
때로는 누구나 잃어야
얻을 수 있는 게 있어.
그게 나에게는 죽음이었고
다시 생명을 얻을 수 있었지.
죽기 전에는
나도 꽤 평범했었어.
부모님은 건강했고
많은 친구를 사귀었고
연인과 결혼하려고 했지만
그러다, 부모님은 강도한테 죽었고
다음날, 친구들은 흑사병으로 떠났고
그다음 날은 연인과 이별하게 되었지.
인생이란 그런 거라고
아무리 되뇌어봐도 안 되겠더라.
어른들의 이야기나
책의 문장들이
오히려 나를 옥죄더라.
그래서 나는 맥주만 마시며
모든 걸 다 포기한 채로 살았어
전형적인 망가진 사람이지, 안 그래?
천천히 이겨나간다,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는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아.
대부분 닳고 닳아
결국 무너져버리지, 사람으로서.
기적은 존재한다고 믿었던
사람들도 부정하다가 결국, 무너져 내리지.
염세적이다,
너무 어둡다고 하겠지만
그렇다면 너는 견딜 수 있겠어?
끝이 없는 어둠,
뻔하지만 가늠할 수 없는
절망이란 것을.
아, 미안
감정이 조금 올라왔네.
그 아이에게 선생님이었지만
나도 결국은 사람이었으니까 말이지.
나도 참,
많이 힘들었어.
이렇게 말하는 것도
그럭저럭 익숙해져야 할 수 있거든.
그 익숙함이
더욱 아플 때도 있지만
어쩌겠어,
생명은 상처를 통해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으니까.
그래서 다들 이겨내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어.
무너지는 것만이
답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니까.
뭐, 그렇다고
죽음을 너무 싫어하지는 마.
언젠가라는 건
매우 낭만적이잖아?
그야, 영원히
살아가고 싶겠지.
역사가
그걸 증명하잖아?
지금의 너의
마음도 그럴 거고.
그것이 너의 생각이라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거야.
그렇지만,
끝이라는 게 있어야
시작이 있는 법이잖아?
자연의 섭리, 운명 등등
이런 거 다 상관없이 생각해 봐.
우리가 끝없는
마라톤을 뛸 수 있을까?
도착지가 없으면
우리는 왜 뛰는 걸까?
허무주의나
그런 걸 떠나서
너의 언어로 생각해 봐.
사람들이 만든 생각은
너의 생각이 아니거든.
과거는
지나가는 파도니까
지금은
수평선을 바라볼 때야.
그러니까
이 대답은 마음에 맡길게.
자자,
내 이야기는 여기서 끝.
너무 파헤치면
나도 아프다고.
아, 사신은
어떻게 되었냐고?
그건
다음 회차에서
말해줄게.
아무래도
이야기가 좀 길어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