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사신도 힘든 밤

<사신, 생명을 논하다>

by 태오






사신 일을 하면서

힘들었던 때가 참 많아.


출근하기 귀찮아서

빈둥대다 가끔 지각할 때나


여러 서류업무를 하다가

실수하면 상사한테 혼나기도 했었어.


물론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것들이야.


그 순간만 잠시 힘들고

훌훌 털어낼 수 있는 먼지거든.


하지만,

진짜로 힘들 때가 있어.


죽음을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야 할 때야.






죽음이 꼭 부정적인 건 아니잖아?

진짜, 최악의 경우에는 방법일 수도 있지.


그렇기에 스스로의

선택을 질타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누구나 자신의 선택을

존중받을 권리는 있어야 하니까.


그럼에도 죽음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건... 뭐라고 말해야 할까.


숭고한 희생은

그래도 말할 거리라도 있잖아?


근데, 눈동자에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면 소름 돋아.


나도 그랬었기에

더욱더 힘들기도 한 것 같고.


우리가 죽음을 가장 싫어하는 이유는

모든 걸 후회하게 되는 때가 온다는 거잖아?


그런 후회조차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바라보고 있다면...


그때의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핸들을 꽉 잡거든.






눈동자에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사람, 그게 나였어.


솔직히 죽고 나서도 괴로워서

난 아직 살아있는 게 아닐까 싶었지.


술이나 더 마시자고

천천히 일어섰을 때


내 앞에 나타난 녀석이

이상한 복장이 하고 있었어.


긴 검은 외투와 챙이 넓은 모자,

새 부리 가면과 지팡이를 든 채로

쳐다보고 있으면 누구든지 놀랄걸?


그때 술기운이 확 깨서

나도 모르게 도망쳐 버렸어.


죽음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기도 했었고.


바로 잡혀서 진정하라고 들었지만,

그 아이보다 어른스럽지 못했네.






아무튼 그렇게

잠시 실랑이를 하다가

같이 저승으로 가게 되었어.


타고 온 말 뒤에 탔는데

뭐랄까,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어.


그때서야, 사신이겠구나...

라고 어느 정도 납득했지.


그제야 나는

죽었다는 걸 느끼게 되었어.


딱히 심장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사신은 좋게 말하면 어른스럽고

나쁘게 말하면 잔소리가 많았어.


이때까지 먹은 술들이

목으로 올라올 정도였지.


귀에 말들을 말뚝으로 박아서

억지로 채우려는 느낌이랄까.


계속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뭐랄까, 계속 마음이 불편했어.






나와 사신은 입장이 다르잖아,

그런데도 계속 자신의 의견만 말하면서


“죽음마저도 생명의 과정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죽음을 다시 생각하라고 계속 말했어.


솔직히 죽었는데

왜 죽음을 다시 생각해야 할까?


이해가 되지 않아서

건성스럽게 계속 대답했지.


그보다도,

이 사신과는 대화가 안 통했어.


계속 서로의 말만 반복하니까

이해는 무슨, 싸우지나 않았으면 다행이었지.


그래서 나는

큰 목소리로 말했어.


“아니, 생명의 과정이든 뭐든...

이해부터 해야 할 거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자,

사신은 잠시 멈칫했어.






고삐를 잡았다가 놓으며

가면이 살짝 떨리는 게 보였어.


나는 입을 꾹 닫고서

저승에 도달하기 만을 기다렸어.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가다가

사신은 한숨을 쉬고 잠시 말을 멈췄어.


사신이 말에서 내리고서

내리라는 손짓을 한 뒤,

앞에 보이는 호수로 갔어.


호수는 순수한 에메랄드를

녹여낸 빛깔로 우리를 맞이했어.


나는 감탄하고서

들판에 앉은 사신 곁에

조금 떨어져서 앉았어.


어색한 분위기였지만,

사신은 내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어.


그리고 돌을 하나 던져

호수를 잠시 일렁이게 했지.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사신은 던져보라고 나지막이 말했어.


돌을 하나 던지자

호수는 똑같이 일렁였어.


“... 죽음과 생명은 같아서 서로 일렁이는 존재야.

그렇기에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걸, 잠시 잊고 있었어”





사신은 머리를 긁적이며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어.


마치, 그리운 누군가를

떠올리는 느낌이었어.


“... 이러면, 이해가 되었으려나?”


그 말에 내 마음은 호수에

살짝 닿았던 바람이 되었어.


나도 바라보며

그리운 모두를 떠올려봤지.


그러자, 눈가가

조금씩 따뜻해지기 시작했어.


가슴에 남았던 추억들이

호수에서 떠오르고 있었어.


부모님과 함께

따뜻한 수프를 먹는 모습.


친구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웃는 모습.


연인과 함께

산책을 하며 행복한 모습.


내가 지키고자 했던 모든 것들이

천천히 밀려왔다가 이내 손끝에 닿았어.


나도 모르게

눈물을 닦아내면서

죽음을 후회하고 있었지.


내가 없어진다면

이 추억들도 같이 눈을 감으니까.


존재할 수는 있어도

증명할 수가 없는 순간이 되니까.


사신은 내 모습을 보며

조용히 등을 토닥여줬지.


그제야 사신이 했던

말들이 조금씩 다가와 주었어.


그리고 말들과 함께

내 마음에 피어난 꽃이 있었어.


“왜 우리는 죽음을

이해하지 않으려고 하는 걸까?”






이 질문을 품은 채로

나는 사신을 바라보았지.


천천히 말을 꺼내려고 했다가

가면 속 부드러워진 표정에 입을 다물었어.


사신은 갸우뚱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인 뒤, 같이 호수를 바라봤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말에 올라타고서 다시 저승으로 향했어.


이제야 사신과

똑바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지.


꽤나 즐거워서

계속 있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았지.


우리는 말에서 내린 뒤

다리를 건너 울타리로 향했어.


사신의 미소가

점점 옅어지는 걸 보면서

멀어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지.


그래서, 나는 떠나기 전에

줄곧 말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어.


“그러고 보니, 죽음도

결국 이해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 말에 사신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어.


가면의 부리가

점점 크게 떨리기 시작했어.


그러고선, 사신은

장갑을 벗은 뒤에 내 손을 잡았어.


온기가 느껴져서 당황할 때,

사신은 뒤로 돌아 성큼성큼 걸어갔어.


나는 어리둥절하면서도

사신의 발걸음에 맞춰서 따라갔어.


피아노 건반이 겨울을 연주하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은 곳에 도착했어.


시선이 많이 느껴져서 움츠렸지만,

저승이라기에는 따뜻한 눈빛이었어.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하나같이 가면을 쓰고 있었어.


나는 사신의 손을

더 꽉 잡고서 따라갔어.


마침내 큰 의자에 앉아있는

매우 큰 존재에게 다다르자, 사신은 고개를 숙였어.


나도 일단은

눈치껏 고개를 숙였어.


그러고서 다시 고개를 들 때

사신에게 귓속말로 물어봤어.


“염라대왕 님이야”






조용한 목소리로 말한 뒤,

사신은 천천히 모습이 사라졌어.


나는 당황해서 시선만 굴렸을 뿐

왠지 모르게 몸은 움직일 수 없었어.


염라대왕 님은 이런 날 보더니

천천히 한쪽 무릎을 굽혀 시선을 맞췄어.


나는 너무나 압도되어서

당황이란 개념도 잊어버렸어.


염라대왕님은 날 이리저리

살펴본 뒤에 호탕하게 웃으셨어.


“너는 죽음을 이해하려고 하는 재밌는 아이야.

지금까지 그런 녀석을 본 적이 거의 없었거든”


큰 거울이 내게 다가오더니

조금씩 빛나기 시작했어.


“좋아, 선택지를 주지. 다시 태어날 거냐?”


염라대왕님은

조심스럽게 내 어깨를 잡았어.


“아니면, 죽음을 알려주는 사신이 될 테냐?”






이다음은 알다시피

사신이 되어서 일하고 있지.


환생이나 부활도

관심은 있었지만...


“왜 우리는 죽음을

이해하지 않으려고 하는 걸까?”


이 질문이 이끌어주었고

그래서, 나는 사신이 되었어.


누구나 운명은

예상치 못하게 다가오거든.


날 데려온 사신은

내 선배가 되었어.


이리저리 도움을 받고 있지만,

잔소리는 아직도 많단 말이야.


언제나 좋은 말을 해주지만...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저 헛소리가 되니까.


그래서 선배도 나한테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어.


나는 덕분에 선배의 말을 인용해서

좋은 선생님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지.


아, 그중에서도

내가 마음에 새겨둔

좋은 말이 하나 있어.


“생명은 유한하기에,

무한한 가치가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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