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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Nov 07. 2019

셔터 오브 러브

초심자의 손바닥 소설 _ 1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 그렇지!"


호연은 이 말을 뒤로한 채 차갑게 가버렸다. 

"야! 하다 하다 너 사진 못 찍어준 것 가지고 내 마음까지 후려치냐?" 

나는 전형적인 찌질이처럼 돌아선 연인의 뒤통수에 대고 다그쳐 물었지만 그녀를 따라가 돌려세울 만큼의 열정은 없었다. 질렸다. 아주 질려버렸다.


그놈의 사진. 그놈의 사! 진! 

호연을 처음 본 것도 따지고 보면 인스타그램에서였다. 소개팅 전에 재식에게서 받은 링크를 클릭하자 청순하고 세련된 여자의 인스타그램이 나왔다. 갸름한 얼굴과 늘씬한 비율, 훌륭한 패션 센스. 솔직히 예쁜 여자 마다할 사람이 있겠냐만은 그런 그녀가 나를 만나주기나 할지 한편으론 부담스러웠다. 


그녀와의 첫 만남. 걱정은 덜었다. 

정사각형의 이미지 속의 그녀는 현실에서 조금 더 귀여웠다. 생각보다 작은 키에 동글동글한 이미지가 나쁘지 않았다. 또래 여자애들이 그렇듯 사진 찍는 것과 예쁜 카페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귀엽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 가볍게 나눠 마신 와인에 살짝 오른 취기를 누르며 걸었다. 여기저기 많이 다니자고, 사진도 많이 찍고 그러자는 내 말에 수줍게 웃던 호연. 그녀의 어깨가 사람들의 행렬 속에서 닿았다가 멀어졌다. 짙어지는 하늘과 기분 좋은 초여름 바람 속에서 우리는 그렇게 시작했다. 


호연과 만난 것은 7개월 남짓. 

그간 우리가 갔던 식당과 카페, 여행지들은 수백수만 장의 사진으로 내 핸드폰에 남아있다. 처음엔 음식이 나오면 벌떡 일어나서 항공 샷을 찍고, 풍경은 멀리서 가까이서 거의 엎드려서 열심히도 찍는 호연의 모습이 귀여웠다. 문제는 그런 열정을 나에게도 요하던 호연의 단호함이랄까. 그녀는 최고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결코 만족하지 않았다. 얼굴은 작아 보여야 했고, 다리는 길어 보여야 했다. 어느 날은 핫하다는 카페에 갔는데 호연은 넓은 창에 채광 좋은, 소위 포토 스팟을 노렸지만 좀처럼 자리가 나지 않았다. 그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엉덩이를 들썩일 때마다 좌우 앞뒤 테이블의 사람들도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쉴 새 없는 셔터 소리, 엉덩이 들썩이는 소리와 눈동자 굴러가는 소리만 들리는 괴이한 경험을 하고 돌아오는 길, 그 카페를 검색해보았다. 모조리 포토존 테이블에서 똑같은 포즈의 사람들의 사진들이었다. 모던한 플레이팅, 창 밖의 푸릇푸릇한 풍경과 내리쬐는 햇살, 살짝 내려다보는 옆모습과 감상에 젖은 뒷모습은 마치 누군가 구성해놓은 사진 상품처럼 인물만 바뀌며 똑같이 나열되어 있었다. 


아이처럼 동공이 크고 맑은 그녀의 눈을 언제고 바라보고 싶었지만 호연은 언제고 내 옆에 앉아 우리 사진만 바라봤다. 액정 속의 우리를 보고 또 보고, 올리고 지웠다. 내 눈에는 그 자체로 예뻤고 그녀 나름의 귀여움이 있었지만 호연은 연신 사진을 보고 읊조렸다. 종아리가 조금 더 길었으면 좋을 텐데, 볼살이 조금만 더 빠지면 좋을 텐데... 


그간 나도 많이 변했다. 주문한 메뉴가 다 나오면 배가 고프더라도 일단 호연이 테이블 샷을 찍을 때까지 기다려주었고, 어디든 찍으면 잘 나올 스팟을 척척 발견해 호연을 세웠다. 친구들을 만나 대충 사진을 찍어줘도 제법 잘 찍는다는 소리를 들었다. 감탄을 자아내는 풍경에 그저 감탄하며 봤던 지난날과는 달리 파노라마로, 타임랩스로, 정방형으로 찍으며 결과물들을 확인하고 다시 찍었다. 


호연도 나도 유별난 성격은 아니라 다른 것들로 부딪히는 일은 없었다. 유일한 다툼의 원인은 사진. 

다시. 다시. 컨펌이 나지 않을 때나 무척 실망한 표정을 지어 보일 때. 나는 죄인이 되었다. 폭염주의보가 내렸던 지난여름 어느 날, 새파란 바다를 뒤로 하고 그녀는 걷고 또 걸었고 나는 찍고 또 찍었다. 땀에 절어 쩍쩍 달라붙던 티셔츠와 작열하던 태양이 잊히지 않는다. 

그녀에게 사랑은 '예쁘게 찍어주는 것'이었다. 사랑을 담아 찍은 사진이 왜 '이 모양'이냐는 것이었다. 내 눈에 충분히 예쁘고 사진도 내 보기엔 충분히 예뻤지만 그녀의 성에 차지 않았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자기를 사랑하지 않으니까 예쁘게 보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사진도 예쁘게 찍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필터 같은 사랑이었다. 

그녀는 복숭아빛 블러셔로, 말린 장미색의 입술로 공들여 화장을 하고도 필터를 잊지 않았다. 필터 속의 그녀는 한결 더 정돈된 피부톤과 선명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옆에 있던 나도 조금 정비된 얼굴로 찍힐 수 있었다. 크게 거짓말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사실 그 자체도 아니었다. 마치 우리의 관계처럼. 우리는 서로의 눈 속에서보다 사진 속에서 더 다정했다.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분명해. 사랑한다면 정말 이 따위로 찍어줄 리가 없어!"

이게 흐느끼면서까지 할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정말 배신감을 느낀 듯 치를 떨며 나를 떠났다. 전문 스냅 작가도 아닌 내가 왜 이런 이별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전에 그저 습관처럼 고개가 떨궈졌다. 





호연과 함께 왔었던 제주에 다시 왔다. 혼자.

작고 조용한 카페에서도, 억새가 물결치는 오름에서도 셔터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남는 건 사진뿐이더라, 라는 말의 본 의미와 다르게 정말 사진만 남아버렸던 호연과의 지난 여행을 떠올리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억새의 은빛 물결이 한눈에 보이는 오름 입구. 

찰칵, 다음. 찰칵, 다음.

인형 공장의 인형들처럼 사람들은 억새 더미 속으로 들어가 한 명씩 꽃받침을 하거나 뒤로 돌아 하늘로 한껏 치켜올린 브이를 하거나 저마다의 포즈를 취하고 찍히고 사라졌다. 

피식 웃으며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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