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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Jan 31. 2020

실제와 허구의 도미노 속에서

"엄마, 아주 아주 무서운 감기가 유행이래."

"이 병에 걸리면 엄마 아빠도 못 만나고 혼자 있어야 한대. 잠도 혼자 자야 한대."


아이는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린이집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나 보다. '아주아주 무서운 감기'가 아닌 '엄마 아빠도 못 보고 혼자'와 '잠도 혼자'에 방점이 찍힌 것이 웃겨 피식 웃어버렸다. 그렇지. 사망률 높은 전염병, 이런 와 닿지도 않고 잘 알 수도 없는 말보다는 엄마 아빠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것이 아이는 더 무서울 테다. 


나에게도 요즘 코로나바이러스만큼 무섭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실제 하는 척하는 허상들'.

전염병만큼 무서운 가짜 뉴스와 클릭하면 품절이라 뜨는 상품들. 불안감을 조성하는 동네 주민들의 카더라 글들... 코로나 바이러스는 아주 아주 미세한 크기라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만큼 공기를 떠도는 공포 그리고 그를 이용한 마케팅. 위기를 재료 삼아 제 입맛에 맞게 요리하는, 이러나저러나 토악질 나는 정치 행위들...


전염병에서부터 시작하는 일련의 도미노 같은 일들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럴듯한 공상과 전해지는 말들로도 이 세계는 간단히 망할 수도 있겠다... 인터넷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이 시대의 맹목적인 믿음이라면 수단 좋은 피리꾼 하나가 호롤롤로 유인해다가 전멸시킨다는 상상이 아주 황당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건 왜일까. 


바이러스 기사 말고 이런 것들이 보고 싶다. 하지만 강제집콕


가만히 앉아 실제 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산소를 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뱉는, 끊임없이 피가 돌고 부지런히 노폐물을 배출하는 내 몸. 그리고 사랑하는 옆 사람들의 몸뿐. 그저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땅에 튼튼히 뿌리 박혀있는 나무들, 넘실거리는 파도를 보며 사랑하는 이들의 따뜻한 손을 잡으며.

실제 하는 것을 더 자주 보고 느끼고 싶다. 화면 속 우글거리는 바이러스 같은 글들, 악담들, 소문들은 접어두고 오래전 쓰인 다정한 글들에 의식적으로 매달려본다. 


실제 바이러스와 바이러스 같은 것들로 인해 머리가 아픈 요즘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지 않기를. 어서 깨끗하고 따뜻한 봄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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