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 그날도 떡볶이가 먹고 싶었다.
코앞이 집이니 멀뚱멀뚱 매장에서 혼자 먹기보다 포장해서 편하게 먹기를 택했다. 그저 떡볶이가 먹고 싶었을 뿐인데 '1인 세트'를 포장해와서 먹고 나니 플라스틱 그릇 두 개와 종이봉투 하나, 비닐 포장 덮개 둘, 봉지가 하나가 남았다.
어느 날은 남편과 뼈해장국을 사다 먹었다. 큰 그릇 하나, 소스통 하나, 반찬 그릇 하나, 비닐봉지 두어 개가 나왔다. 설거지를 하고 플라스틱 그릇들을 헹궈 모으는데 뭔가 찜찜하다.
이 기분 뭘까. 음식을 씹는데 뭔가 정확히 아프다고 하기엔 부족하고 그냥 외면하기엔 은근히 아려오는 초기 충치의 기분이랄까. 이렇게 계속 방치해두다간 몇 달 후 머릿속까지 파고들 선명할 고통이 올 텐데, 하는 불길한 기분.
#제로웨이스트 #친환경 #공생 #환경운동...
다양한 브랜드에서 콩기름 인쇄를 하고 공병을 수거하고, 친환경 굿즈를 만든다. 카페에서는 종이 빨대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테이크 아웃잔은 테이크 아웃 고객에게만 제공된다. 쓰레기들을 사용한 예술 작품들도 많이 봤다. 이러한 움직임이 시작된 것도 꽤 몇 년 된 것 같다. 그런 다양한 노력들을 보며 '참 좋은 일 한다' 정도로 생각했다. 거기까지가 환경운동, 지구에 대한 내 태도였다. 역시 이가 아파야 치과를 가고, 물 때가 껴야 청소를 하는 게으른 나 다운 반응이다. 그런데 요즘 좀 생각이 달라졌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나태함의 대명사인 내가 위기의식을 느낀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 인류도 발 디딜 만큼의 얼음 조각에서 겨우 서 있는 북극곰 같은 위기에 봉착했다는 것 아닐까. 자꾸만 고민이 되었다. 말도 안 되는 이상한 날씨, 쓰레기섬, 대형 해양생물체의 집단 사망, 코에 빨대가 꽂힌 바다거북... 똑똑한 인간들이 만들어 낸 편리함의 역습이 시작되고 있었다. 편리함은 일시적으로 사용되고 사라졌지만 편리함의 대가는 썩지도 않고 시퍼렇게 살아있었다. 동물들의 몸에, 돌 사이에, 들이마시는 공기에, 매일 먹는 소금 속에...
우스갯소리로 두면 둘 수록 불어나는 것이 사채 빚과 치과 치료비라고 한다.
이제 하나 더 추가됐다. 썩지 않는 편리함. 이 넓은 지구도 더 이상 담을 수 없을 만큼 우리는 그동안 편하게 살았나 보다. 나 역시 편리함에 중독된 1 인으로, 여전히 편의성을 포기하지 못하고 산다. 하지만 문득문득 찜찜해한다. 그리고 식탁엔 물티슈 대신 일반 휴지를 놓고, 저녁에 먹을 돈가스를 비닐에 담아 해동하려다 멈칫 찬장을 뒤져 적절한 크기의 반찬통을 찾는다. 아이가 먹는 소포장 요구르트 한 패키지를 다 먹으면 플라스틱 병은 스물몇 개가 나왔다. 이동시엔 흘릴까 봐 빨대도 사용해야 했다. 이제는 웬만하면 요구르트를 사지 않게 되었다. 아기에게 변기에 쉬하면 달달 구리를 주겠다 딜을 하면서 기저귀를 할 수 있는 한 빨리 뗐다. (기저귀는 정말이지 죄책감이 드는 쓰레기 중 하나였다. 그렇다고 늘어난 티에 서서 밥 말아먹으며 천기저귀를 쓸 자신도 없었지만.) 이렇게 아주 사소하고도 소심하게 그 찜찜함을 달래며 살아간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을텐데 불안해 하면서...
"아야야 아야야 아기고래 배가 아파 잉잉잉~ 아기 고래 뱃속엔 플라스틱 한 가득~"
아이가 배워온 노래다. 또한 얼마 전 다녀온 생태문화전시관에선 멸종위기 동물들에 대해 보고 들었다. 이렇게 귀여운 동물들이 조금 있으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눈물짓던 그녀였다. 그리고 그 전시관 옆의 맥도날드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는 미술 놀이할 때 쓴다며 플라스틱 빨대를 두어 개 뽑아 왔다. (...?) 고집부리는 것을 말려 하나만 가져왔지만 아이 모습을 통해 나를 본다.
귀여운 동물은 동물이고 빨대는 만들기 할 때 필요하니까... 그건 그거고 일단 귀찮으니까...
언제까지 우리는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오늘도 이렇게 편리하고 찜찜한 하루가 지나간다.
"생각해보면, 지렁이들이 내려오기 전에 끝나지 않은 게 신기하다. 우리는 행성의 모든 자원을 고갈시키고 무책임한 쓰레기만 끝없이 만들고 있었다. 100억에 가까워진 인구가 과잉생산 과잉소비에 몸을 맡겼으니, 멸망은 어차피 멀지 않았었다. 모든 결정은 거대 자본에 방만히 맡긴 채 1년에 한 번씩 스마트폰을 바꾸고, 15분 동안 식사를 하기 위해 4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을 플라스틱 용기들을 쓰고, 매년 5천 마리의 오랑우탄을 죽여 가며 팜유로 가짜 초콜릿과 라면을 만들었다. 재활용은 자기기만이었다. 쓰레기를 나눠서 쌓았을 뿐, 실제 재활용률은 형편없었다. 그런 문명에 미래가 있었다면 그게 더 이상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멸종이 끔찍했다. 멸종, 다음 멸종, 다다음 멸종. 사람들 눈에 귀여운 종이 완전히 사라지면 '아아아' 탄식한 후 스티커 같은 것이나 만들었다. 사람들 눈에 못생기거나 보이지 않는 종이 죽는 것에는 개뿔 관심도 없었다. 잘못 가고 있었다. 잘못 가고 있다는 그 느낌이 언제나 은은한 구역감으로 있었다. 스스로 속한 종에 구역감을 느끼기는 했어도, 끝끝내 궤도를 수정하지 못했다."
_ 누군가의 개입에 의해 지구에 온 (플라스틱을 먹어 치우는) 거대 지렁이가 문명을 파멸시키고 지구를 리셋한다는 내용의 이야기. 정세랑의 <리셋>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