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남편은 음식을 맛있게 만들 줄 알고, 맛있게 먹을 줄은 더더욱(?) 안다.
결혼 전 남편은 10여 년의 자취 경력으로 비 오는 날엔 혼자 집에서 부침개를 부쳐먹기도 하고, 내가 놀러 간 날엔 수준급의 파스타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를 보면 왠지 요리 감각도 타고나는 것 같다. 재료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생각지 못한 조합으로 훌륭한 맛을 낼 줄 안다. 심지어 보통 밥 준비를 한바탕 하고 나면 음식 냄새를 너무 맡아서 입맛이 뚝떨어지곤 하는데 자기가 만들고도 그 누구보다 맛있게 먹는, 그야말로 식(食)계의 숨은 고수라고 볼 수 있다.
반대로 나는 '아무거나' 허기 달래는 것이 중요한, 상당히 원시적인 타입이다. 전 끼니와 같은 메뉴를 먹으면 좀 괴로워하는 남편에 비해 맛이 없지 않다면 삼시 세 끼도 먹을 수 있다. 좋아하는 특정 메뉴(푹 지진 묵은 김치나 오징어 젓갈)만 있어도 며칠은 때운다. 오래전부터 밥 챙겨 먹는 게 귀찮아서 먹으면 배불러지는 알약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는데, 그 생각을 말한 순간 남편은 완전 못 배운 사람 보는 듯한 괄시의 눈빛과 함께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게 밥먹는 게 귀찮은 주제에도 쪘다. 쪄버렸다. 요 몇 달 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 평균 체중과도 거리를 두게 된 것이다. 종일 육아에 지친다며 먹고 먹고 벅차오르게 먹다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이제 아이도 유치원에 가기 시작했고, 그만 손 놓아온 것들을 추스를 때가 되었다. 몇 해 전 저탄고지(저탄수화물-고지방)다이어트로 뺐던 5킬로가 고스란히 돌아왔다. 오 키로는 돌아오는 거야~~!!! (아오 씨)
다시 육식을 시작했다.
아무리 아무거나 먹는 편이지만 닭찌찌는 늘 힘겨웠다. 나의 저탄수 다이어트는 닭찌찌와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탄고지 식단을 검색해보면 차돌 숙주볶음이라거나 아보카도 샐러드 등 다양하고 맛있는 메뉴들이 있지만 손이 많이 가는 메뉴였다. 어차피 목적은 다이어트. 그냥 간단하게 먹고 싶어 닭가슴살을 먹곤 하는데, 침샘도 힘겨워하는 퍽퍽 살들을 양념도 없이 씹다 보면 내가 씹는 이 괴기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난 이 괴기 먹어야 하네 하며 무념무상의 상태에 이른다. 나는 왜 이 괴기 씹는가 이게 정말 나의 괴긴가 이 괴기 끝에서 내 살은 줄어들까 하며. 씹어도 씹어도 좀처럼 넘어가지 못하고 목이 메는 그것을 넘긴다.
오늘 저녁도 대충 야채와 볶아 대충 먹으려 했지만 남편은 단호했다.
"어허! 아무거나 먹는다니!"
그렇다. 남편에게 있어 식사 앞에 '아. 무. 거. 나'는 추잡한 단어인 것이다. 퇴근한 남편은 해산물 먹어도 되냐고 묻더니 부랴부랴 지지고 볶아 해산물 숙주 볶음을 내민다. 어차피 밥 먹는 아이, 남편과 메뉴 통일도 못하는데 이런 그릇을 받들자니 황송해지는 마음이다. 다이어트도 맛있게 해야 한단다. 맛있게 먹는 내 모습을 보곤 백종원 같은 미소가 번진다.
남편은 대부분의 시간 행복한 편이다. 근심 걱정이 별로 없는 타입.
나는 왠지 그 비결을 '잘 먹는' 것에 두고 싶다. 자취하던 시절에도 혼자 빈대떡을 부쳐 먹던 그 정성. 자기 자신에게 맛있는 것을 먹여주는 부지런함. 그것도 어쩌면 튼튼한 자존감에서부터 발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 자신에게 아무거나 먹이지 않겠다는. 아 물론 우리 남편은 그저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 가장 행복한 먹돌이인데 나 혼자 괜한 의미부여일 수도 있겠다. (쓰다 보니 후자가 더 설득력있...)
엊그제는 늘 그렇듯 셀프 칭찬이 이어지길래 "우리 남편 참 행복하게 사네~" 했더니 "그럼, 행복해야지 그게 하나님이 바라시는 건데!" 하고 큰 눈을 더 크게 뜬다. 그렇지.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일이지. 즐겁게 먹고 단순하게 사는 남편의 명쾌한 말에 눈 앞에 거대한 느낌표가 나타난 느낌이다.
"네가 무슨 꿈을 꾸는지에 대해서 신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행복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엄청난 신경을 쓰고 있다."
우리 가족은 하나님이라는 단단한 의지가 있지만 故신해철, 마왕이 한 말처럼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마음에 담아두면 좋을 말인 것 같다.
내일은 냉장고 속 닭찌찌가 슬퍼하겠지만, 며칠째 생각나다 못해 군침이 도는 디저트 맛집 카페에 갈 예정이다. 보드랍게 부서지는 따끈한 스콘 위에서 짭짤한 솔트 캐러멜이 적당하게 녹아있는 예술 작품과 함께 커피를 먹을 것이다. 배고플 때 아무거나 먹고 말랐던 과거의 나는 남편을 만나 행복한 돼지가 되었다.
이렇게 행복을 찾아 열심히 살고 난리네. 나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