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로 종일 아이와 집콕하는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설거지나 청소 등 집안일을 할 땐 어쩔 수 없이 혼자 놀기를 권하게 된다. (권하긴 하지만 아이는 주로 내 등 뒤에 앉아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물 틀자마자! 고무장갑을 끼자마자! 다 끝났냐고 묻는 게 태반이다.)
오늘은 드물게 방에서 혼자 놀고 있는 아이 덕분에 사색에 젖은 설거지를 할 수 있었는데, 사색은 식빵으로부터 시작됐다. 왜 방금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면서 그 식빵 생각이 났는지는 먹보만보인 나로서 알 턱이 많다.
작년 가을, 북적이던 주말의 놀이터에서 아이와 과자를 먹고 있었는데 어떤 꼬맹이가 나를 졸졸 쫓아왔다. 그 티 없고 맑은 눈동자는 물론 황톳빛 내 얼굴이 아닌 과자로 향해 있었다. 과자를 하나 내밀었더니 아이는 기쁜 눈을 머쓱한 입꼬리로 무마하고는 이내 와그작와그작 경쾌한 소리로 씹어먹었다.
"고맙습니다 해야지." 꼬마의 엄마가 뭔가를 오물거리는 아이와 과자 봉지를 든 나를 번갈아보더니 민망한 얼굴로 인사를 시키곤 슬그머니 식빵을 내밀었다.
아유 뭘, 하는 입과는 다르게 누구보다 진심은 손은 잽싸게 식빵을 받아 들었다. 당 떨어지는 현장 제1위에 달하는 놀이터에서 이토록 보드라운 탄수화물이라니! 식빵은 과장을 조금 보태 결대로 찢어지는 광고 속 그것처럼 보드랍고 촉촉했다. 마실 것이 없어도 목 막힘 없이 스르르 입안에서 녹았다. 혀의 맛봉오리에 어떠한 자극도 남기지 않으면서 우아하고 교양 있게 녹아드는 이 풍미는 도대체...! 식빵을 나눠먹은 남편과 나는 눈을 빛내며 '이 식빵 뭐지!' 하는 무언의 감탄과 함께 은혜를 베푸신 어머님을 찾아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놀이터 이야기는 그저 이게 전부다.
무슨 이런 싱거운 이야기가 다 있냐고 이런 식빵!을 외치지는 말아달라. 나와 남편은 아직도 그때 그 식빵이 어디서 파는 건지 물어봤어야 한다며 입맛을 다신다. 인생의 후회가 별로 없는 우리들에게, 좋은 게 좋은 거고 먹는 게 남는 거고 인생 고기서 고기고 그런 우리들에게 꽤나 큰 후회거리 중 하나인 것이 그 식빵의 출처 미확인이란 말이다.
어찌됐든 오늘 그 식빵을 떠올리자니 지금의 현실과 꽤나 괴리감이 들었다. 북적이는 놀이터에서 침 튀기고 열 내며 노는 아이들, 모르는 아이와 나눠먹는 과자, 그 아이 엄마가 나눠준 식빵...
누군가를 경계 없이 마주하고 뭔가를 나눠먹는 것이 이토록 어색해질 줄 누가 알았을까. 코로나 생활이 더 길어진다면 그때는 '어떻게 모르는 아이와 과자를 나누어 먹을 수 있었을까'하고 생각하게 될까.
며칠전 한바탕 휘몰아친 태풍 이후로 질감이 달라진 가을 공기에 아이는 들떠 나가자고 했다. 카페에 가서 커피와 주스를 사 먹자고.
이곳 제주는 인구밀도 때문인지 수도권보다는 코로나 확산이 덜하지만, 집 앞 간단한 외출조차도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식사 시간이 한참 지났으니 사람이 적겠지?', '사람 많으면 그냥 테이크 아웃해서 나와야지.' 몇 가지 경우를 셈하고 나서야 동네의 작은 샌드위치 가게로 향했다. 유치원을 3 주째 쉬고 있지만 날씨가 시원해지니 마스크 써도 덜 답답하다며 그저 신이 난 아이가 안쓰럽다. 다행히 아무도 없는 가게에 앉아 우리는 무사히 커피와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숨은 그림 찾기 책을 볼 수 있었다.
또 내년엔 오늘의 비장한 외출과 잠깐의 카페 데이트를 어떻게 떠올리게 될지 문득 궁금해진다. 식빵과 과자를 나눠먹던 작년의 놀이터처럼 부디 생경한 느낌으로 회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 누가 기침만해도 화들짝 놀라고 어딜 가든 손소독제를 발라 파리처럼 비벼대던, 참 희한한 시절이었다고 웃으며 말할 수 있기를.
요즘 내게 뭐가 가장 하고 싶냐고 누가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모르는 꼬마랑 과자를 나누어 먹고 싶어요." 아주 맛있는 과자를 사서 놀이터로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