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까짓 그네 말고 이렇게나 좋은 그네

by 잠전문가

그네가 있는 놀이터에는 좀처럼 가고 싶지 않다.

넓은 놀이터나 작은 놀이터나 그네는 대부분 2 개다. 많아야 네 개.

아이들은 그네에 공석이 생기기를 바라며 미끄럼틀을 타다가도, 시소를 타다가도 미어캣이 되어 정황을 살핀다. 뭐 적극적인 아이들은 빈자리로 얼른 달려가 타거나, 이미 타고 있는 언니 오빠 형아 누나 친구 동생에게 아양을 떨며 잠깐만 타게 해달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쑥스러움 많은 우리 딸은 그네 놀이터에 갔다 하면 슬퍼진다. 그네를 못 타서 슬퍼지거나 화가 나거나 하는 일이 잦다. 그래서 나는 그네 놀이터에 가는 게 싫다.


아이 대신 나는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그네를 노려본다. 그러다 자리가 나면 딸에게 복화술로 말한다. "달려!"

어서 가서 타라고 등을 떠밀어도 엉거주춤 걸어가다가 매번 자리를 놓치고 돌아온다. 어이 딸내미, 선비는 비가 와도 뛰지 않는다 뭐 이런 거야? 아니면 물에 빠져도 개헤엄일랑 치지 않으리 이런 고고한 다짐? 그네는 타고 싶지만 조급한 마음을 들키며 뛰어가는 건 싫은건지 아이는 조금 실망한 표정으로 돌아온다.


그날도 그랬다.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실컷 그네를 타더니 잠깐 내렸다. 나는 다시 지령을 내렸다. 그네 타고 싶은 영혼이여 달려라! 쟁취하라! 눈치 보며 걷는 듯 뛰는 딸을 보더니 그 여자 아이는 다시 잽싸게 그넷줄을 낚아채곤 "워!!!" 하고 큰소리를 내며 아이를 놀렸다.

심약한 딸은 그네 자리를 놓친 것도 분했지만 언니가 큰 소리를 내며 놀리니 당황하고 말았다. 보던 나도 걔가 얄미워 속으론 '이런 #@$#^$^*&$^!!!' 했지만 놀이터는 어린이들의 것. '공중도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선 어른이 나서지 않는다'가 내 모토여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아이는 네모 입을 하고 음소거로 울면서 돌아왔다.


아니 그럼 얼른 뛰어가서 타던지! 그네 앞에 줄을 서 있던지! 못 탄다고 속상해하질 말던지!

그네에 연연하는 아이가 답답했다. 아니, 사실은 속상했다. 그네 소녀가 내심 야속하기까지 했다. 위로의 말을 건네며 아이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답답한 마음을 감추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그라데이션 화법으로 다그치는 내가 있었다.


1.jpg 하 꼰대 일 인 자진 신고합니다...


그네... 그네가 뭐라고!

그게 내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그게 뭐라고. 그까짓 그네. 뭐 그런 걸로 울고 그래.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이어지는 오래전 놀이터 생각.


그네가 뭐긴. 그네지.

'빈 그네를 보면 오예- 하고 달려가고, 누가 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아쉽고 부러운 게 그네지.'

'실컷 타고 내려도 남 타는 거 보면 아까운, 그렇게나 좋은 게 그네지.'

놀이터가 시시해진 어른이 되어 잊고 살았던 그네의 맛. 발을 구르며 점점 더 높이 올라갈 때의 고양감, 멀리까지 내려다 보이는 탁 트인 시야, 송골송골 땀이 난 얼굴을 씻어주는 시원하고 상쾌한 윗 공기...

나도 그 어린 시절 '그까짓 그네!' 하며 쿨하게 돌아서서 놀지 못했으면서. 타박을 멈추고 가만히 아이 등을 쓸어주었다. 다른 거 하고 놀면 되지 않냐고, 그네 못 탔다고 우냐고 (이어지는 말을 당연히 '울 일도 셌다'다.) 답답해할 일이 아니었다.


코로나 19라는 몹쓸 역병으로 요즘 더욱 한 몸처럼 지내다 보니 아이와 나를 동일시했던 것은 아닐까. 나도 뭐 작은 것 하나 간섭받기 싫어하면서 어떤 보태는 말 없이 아이 감정을 수용하는 게 이렇게나 어려운지 몰랐다. 지금은 그네 정도로 그치지만 아이가 더 크면 다른 예민한 주제들로 아이와 감정의 벽을 쌓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찔했다.

얼마 전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어른과 꼰대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한 어린이가 이렇게 답했다. "어른이 되면 꼰대가 된다." 생각지 못한 명쾌한 답에 입을 틀어막으며 웃었지만 속에서는 약간의 두려움이 차올랐다. 그네의 맛을 누구보다 잘 알던 어린이는 이렇게나 감흥 없는 어른으로 자라 버렸다. 놀이터의 꽃 그네를 '그까짓 그네'라고 비하하기를 서슴지 않으며.


아이라고 나의 즐거움을 다 이해할 순 없을 것이다. 생긴 건 사약인데 생명수처럼 챙겨 마시는 커피(음용 아니죠. 수혈이죠.) , 이거 뭐 셀프 고문도 아니고 이 악물어가며 찢고 비틀고 꼬는 요가... 그럼에도 우리 꼬마는 아니 그런 걸 왜 먹어! 왜 해! 왜 그렇게까지 목숨을 걸어! 하고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서른여섯짤 엄마는 여전히 여섯 살 아이보다 부족한 모습에 반성의 밤을 개최한다.


그날 ㅁ자 입으로 울며 돌아온 아이는 결국 언니 오빠들이 그네에 흥미를 잃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할 때가 돼서야 그것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토록 애증 하는 그네에 앉아 하염없이 그들의 놀이를 지켜보며 몰래몰래 웃던 아이는 행복해 보였다. 내일은 집 앞 공터에서 해먹을 걸고 놀자. 집에 오는 길, 그네를 오래 타서 좋았다던 아이 손을 잡고 이야기했다. 둘이 앉아 과자나 까먹으며 딸내미 좋아하는 방귀 얘기 똥 얘기 실컷 하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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