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기의 가뿐함

by 잠전문가


"힘줘도 아프고 힘 빼도 아프니, 그냥 힘 빼세요."

이게 낙지가 아닌 인간에게 가능한 동작인가- 싶은 찰나, 고통의 강도와 타이밍을 아는 유튜버 요가 선생님은 세상 평온한 목소리로 멘트를 날린다. 힘 빼고 그냥 낙지가 되라고.

미간을 구기며 낑낑거리다가 저 멘트에 그만 피식하며 긴장이 풀렸다. 힘줘도 아프고 힘 빼도 아프니 힘을 빼라니. 이상하다. 힘을 빼버리니 뭔가 유체이탈 같은 느낌으로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고, 느껴지는 고통마저 체념하게 되어버렸다. 미친 야생마 같던 들숨과 날숨이 순하게 가라앉는다.




유쾌한 사람을 좋아한다.

되는 일 없이 꼬이고 피곤한 날에도 농담을 던질 줄 아는 사람. 웃음이 나오냐, 하는 순간에도 누군가 낄낄거릴 포인트를 찾아 말장난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 연유로 좋아하는 1인이 <라이터를 켜라>, <기억의 밤> 등을 연출한 장항준 감독이다. 세상 경박한 말투와 얇고 높은 목소리의 소유자인 그 특유의 비급 개그코드를 몹시 좋아한다. 장 감독이 나오는 라디오나 팟캐스트, TV 방송은 제법 챙겨보는 편인데 그가 디제이를 하던 라디오에서 자주 하던 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인생은 쟂빛이다악!!!" 이다.

세상 발랄하고 즐거운 말투로 무언가 진행이 막힐 때마다 "인생은 쟂빛이다악!" 하는 외마디의 외침이 왜 그렇게 웃기는지 숨넘어가도록 웃었다. 웃음 포인트는 '잿빛'과 미스매치되는 명랑한 목소리에 있다. 공든 탑이 무너지고, 뒤로 넘어졌는데 코가 깨져도 저 명랑한 목소리만 마음속에 있다면 뭐든 괜찮을 것 같은 기분. 호쾌한 목소리로 "인생은 쟂빛이다악!!!"하고 외치고 나면 왠지 어떤 일 앞에서도 의연할 수 있을 것만 같다.




5.jpeg 출처 _ 만화 도라에몽


우리는 이제 어른이 되었고, 하루에도 재미없는 일이 대출 이자 납입일처럼 성실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뻔한 말 말고 으른끼리 솔직하게, 다들 그렇지 않나?(나..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해줘요...)

그러나 삶의 무게만을 끝없이 한탄하는 사람과는 오래 대화하기 힘들다. 그건 잿빛을 넘어 암흑을 만들기도 하니까. 오히려 삶의 무게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편이 때로는 가뿐함을 가져다준다. 힘줘도 아프고 빼도 아프니 그냥 힘을 빼라고, 인생은 잿빛이니 암흑이 되기 전에 우리 농담을 하자는 말들에 가뿐하게 일어설 힘을 얻는다.


코로나 19로부터 이어진 우울증, 경제 침체... 모두가 어려운 시절을 지나고 있다.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이성을 잃은 어떤 사람은 고의로 편의점을 들이박는 등 해괴한(?) 행동까지 벌이고 있다.

치사하고 드러운 게 인생이고, 권선징악 같은 건 개나 줘 버린 게 삶이다. 그래도 명랑한 목소리로 인생은 잿빛이다! 외치며 오래도록 농담하고 낄낄거리는 삶을 살고 싶다. 웃음만이 이 힘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자 유일한 위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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