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시간엔 엄마 재미있는 것 하세요

by 잠전문가

창의 미술 유망주가 흩뿌려 놓은 색종이 조각들.

이건 뭐 맷돌로 갈아먹은 건가 싶은 새우깡 가루.

바닥에 방울져 묻어 있는 무언가들...


월요일은 바쁘다.

빨래, 청소와 설거지 그리고 간단한 이번 주의 반찬거리를 마련해두고 한숨 돌린다. 아이 하원 시간 한 시간 전. 뭘 하면 보람찬 자유 시간을 보낼까 궁리하다 야심 차게 육아서를 집어 든다.


원래 육아서를 즐겨 읽는 타입은 아니다. 정확히는 육아 지침서를 잘 읽지 않는다. 이유는 자기 계발서를 읽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집집마다 부모 성격, 아이 성격은 각양각색인데 '이렇게 하세요' 하는 하나같이 똑같은 메시지는 좀 와 닿지 않기도 하고, 다른 것 보다 육아는 이론이 아닌 실전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듣는 것, 소리치기 전에 잠깐 멈춰서 한숨 돌리는 것... 그런 건 내가 모르는 게 아니다. 알지만 이미 가슴속에 불꽃놀이가 펼쳐지는 것뿐.

아무튼 육아서는 아이와 자주 부딪힐 때 마인드 컨트롤 정도로만 활용하고 있는데 오랜만에 도서관에서 끌리는 제목의 육아서를 빌려온 터라 한 번 들여다볼까 하고 책장을 넘기니 역시나 비슷한 이야기였다. 지루했지만 이미 보기로 했으니 계속 책장을 넘겼다. 글자를 두 눈으로 똑똑히 읽어 내려갔지만 왠지 한 귀로 들어와 한 귀로 흘러 나가는 교장 슨생님 훈화 말씀같이 호로로로 기억 저편으로 스러져가는 느낌이다.


영롱한 자태의 판타지 소설


그렇게 손발이 안 맞는 눈과 뇌에 당황하며 책장을 넘기다 보니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

에잇. 아깝다. 꿀같이 달콤한 시간을 유야무야 보낸 것이 한탄스럽다. 재미없는 책을 읽다니! 재미도 정보도 얻지 못한 채 책장을 덮었다. 거실 바닥엔 육아서와 함께 빌려온, 좋아하는 작가의 SF 소설집이 놓여 있었다. 형광 주황색으로 '날 좀 읽어보라며' 유혹하는 그 책을 읽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쩝, 입맛을 다신다. 내일은 꼭!




"제가 말한 적 있지요? 해병대처럼, ‘한 번 엄마는 영원한 엄마’라고.

그러므로 언제나 아이에게 묶여 무언가를 못한다는 발상은 버리고, 엄마이지만 동시에 인간인 나 자신의 욕망을 건강한 선에서 실현시킬 궁리를 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합니다." _ <엄마 내공>, 오소희


내가 아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에는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닌 '날 위한 것'을 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다. 일이 년 육아하고 말 것이 아니기에 나는 더 본격적으로 나의 욕망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욕구불만의 엄마가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은 어렵다. 내 시간과 꿈을 희생하며 키운 아이에게 어찌 한 치의 기대도 가지지 않을 수 있는가. 아이에게 그 기대는 짐이 되지 않을 수 있는가. 그 기대가 무너질 때 초연할 수 있는가.

적어도 나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엄마는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었는데 너 키우느라 못했어" 같은 말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아서 내 생활, 나의 즐거움을 지키기 위해 나름의 사투(?)를 한다. 이것도 노력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아이에게 필요한 물건이나 옷을 사는 것, 아이의 학원을 검색하는 것, 그림책을 고르는 것, 아이 친구 엄마와 육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 엄마들은 애매하게 육아의 옷을 입은 일들을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자잘하고 끝도 없는 일들은 육아가 아닌 척하고 엄마들의 시간을 끝없이 잡아먹는다.


의식적으로 '오직 나만을 위한' 것들을 해야 한다. 그래서 때로 남편에게 아이 칫솔을 주문하는 일 등을 부탁하고 별 것 아닌 일도 같이 의논하여 고민 시간을 줄인다. 오직 아이만을 위한 놀이보다 어른도 같이 재미있는 보드게임을 알아보고 주문한다. 여섯 살 아이에게 내 책을 읽어주기도 한다. 의외로(?) 흥미를 보이며 계속 읽어달라고 할 때도 있다. 아이와 물놀이 가서 신나게 놀고 싶어 요즘 수영을 배운다.


엄마 스스로의 즐거움을 찾을 때 아이와도 더불어 즐거울 수 있다. 아이에게 조금 더 여유로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형광 주황색 공상과학소설집을 집어 든다. 한껏 발랄하고 기괴한 이야기들로 나를 충전한다. 그리고 글을 끄적인다. 동네 소식지와 독후감 수상작으로 시작한 나의 글들이 더 근사하고 단단한 책으로 발전해 책장에 쌓여가기를 기대하며 나만의 꿈을 꾼다. 엄마의 꿈, 엄마의 재미를 아이에게 말해주면 아이는 박수를 치며 기뻐한다. 누구 하나 희생하지 않고, 그렇게 서로에게 손뼉 치며 살기. 누가 혀를 차더라도 그 균형, 야무지게 꿈꿔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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