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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Mar 14. 2020

<육아가 한 편의 시라면 좋겠지만>, 전지민

짤막한 SNS의 글을 읽으며 내심 부러워하던 이가 있다.

나와 비슷한 또래 같아 보이는, 내 딸과 비슷한 또래의 딸을 둔 그녀는 항상 소박하면서도 푸짐한, 시골밥상 같은 글들을 맛깔스럽게 풀어놓았다. 글 읽는 게 제일 좋고 글 쓰는 게 재미있는 나로서는 맛있는 글을 쓰는 이들이 역시나 가장 부럽다.


글을 읽다 보면 글쓴이가 어떤 사람인지 느껴지기 마련인데 이 책의 저자는 참 단단해 보였다. 자기 삶에 자부심이 있고 후회나 갈팡질팡하는 마음과는 먼, 강단 있어 뵈는 스타일이랄까. 전반적으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두루마리 휴지같이 흩날리기 일쑤인 나로서는 정반대의 면모가 돋보이는 그녀의 삶에 눈길이 갔다.


부러워서 괜히 팔로우는 안 하고 (웬 똥자존심?!) 둘러보기에 뜰 때마다 힐끔 훔쳐봤다. 정면으로 응시, 가 아닌 왠지 곁눈으로 보는 느낌으로다가. 저자는 내 존재 자체도 모를 텐데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던 중 이게 웬일? 그간의 육아 에세이를 모아 책까지 냈다. 부러운 마음 반, 호기심 반으로 주문했다가 아이가 잠든 두 번의 밤에 나눠 호로록 읽었다.


힘을 빼고 감동을 줍는 사계절 육아 <육아가 한 편의 시라면 좋겠지만>



씩씩하고 강인한 여자들을 좋아한다.

내가 그렇지 못해서인 것도 같고, 멋있다 그냥. 책장을 덮으며 부러운 마음도 같이 덮였다. 단단하고 씩씩한 사람일 것이라는 예상은 당연히 문장 곳곳에서 맞아떨어졌고, 추가로 낭만도 다정함도 곁들여져 있었다. 같은 시대에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이 '한 편의 시보다 더 낭만적인' 육아 단상에 질투와 부러움은 스르르 녹고, 따스한 여운과 공감으로 책장을 넘겼다.


제목이 참 좋다. <육아가 한 편의 시라면 좋겠지만>.

아이가 더 어렸을 때 나는 육아가 전쟁 같았다. 물론 지금도 외동 딸아이 하나 키우면서도 앓는 소리를 그렇게 한다. 심지어 육아 에세이를 쓰며 <현장 르포 육아 24시>라는 이름까지 붙였으니 말 다했다.


'육아가 한 편의 시라면 좋겠지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나은이가 금세 몸 위로 올라타 얼굴을 바짝 들이민다. 가슴에 얼굴을 부비더니 갑자기 내 팔과 어깨를 작은 두 손으로 열심히 주무르기 시작한다. 닥터 피시처럼 근육이 아닌 살 껍데기만 간신히 잡았다 놓았다 하면서 안마를 해주는데 마음이 다 간지럽다.
'그래도 육아는, 한 편의 시보다 감동이야.' _ 7p

저자는 말한다. 비록 육아는 예측 불가한 상황의 연속, 좋은 상황과 그렇지 못한 상황 속의 혼돈이지만 그래도 육아는 한 편의 시보다 감동이라고.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의 예쁜 말과 모습을 잊을세라 화면에 담고, 육아일기를 쓰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테다. 살아 생동하는 시. 육탄전의 얼굴을 했으나 사실은 곱게 말린 한송이 꽃. 육아는 그런 것일 테다. 저자는 시간 사이사이에 끼워 곱게 말린 꽃들을 살살 꺼내 보여준다. 아름답고 애틋하고 다정하다.

육아 에세이라지만 저자의 일, 어린 시절, 크고 작은 에피소드부터 단단한 신념까지 한 사람의 역사를 따뜻한 느낌의 흑백 영사기로 돌려본 것 같은 느낌의 책이다. 솔직하고 담백한 글과 생각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밑줄 긋기>

부모에겐 오늘이 가장 작은 아이, 그래서 황소만큼 커버린 자식을 앞에 두고도 늘 애틋하고 짠함을 느끼는 세상 부모들. 거저 주어지는 아이란 없다. 어른으로 태어난 아이도 없다. 나의 아기와 이제 막 어른이 되어가는 큰 아기들까지 오늘 밤, 부모의 사랑을 느끼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_ 83p


"나은아, 비움의 기쁨을 누리려면 너도 이야기가 많은 어른으로 자라야 해. 나은이 이야기가 너무 넘치면 그때는 엄마가 조용히 들어줄게!"

빈 창가에 앉은 우리 모녀의 얼굴을 나뭇가지 그림자가 쓰다듬는 조용한 도서관, 그렇게 또 평범한 오후가 시작되었다. _ 2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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