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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Mar 21. 2020

<엄마의 20 년> , 오소희

코로나 19로 강제 집순이 생활을 시작한 지 어언 한 달... 책을 많이 읽고 있다. 


우울한 시국이지만 신기하게도 고르는 책마다 재미있어 그나마 다행이랄까. 6 살 짜리 집순이 한 명과 운명공동체같이 지내고 있어서 그녀가 잠들기 전까진 엄마로 열심히 살고, 육퇴 이후엔 육아에 관한 것(아이 문구류, 간식 쇼핑 조차!) 은 일절 들여다보지도 않고 나하고 싶은 것을 하는 편이다. 그런데 꼭 읽고 싶은 '엄마' 이야기 책들이 최근 두 권이나 보여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재우고 읽었다. 한 권은 최근 리뷰한 전지민 작가의 <육아가 한 편의 시라면 좋겠지만>이고, 한 편은 이 책 <엄마의 20년>이다. 


오소희 작가는 엄마들에게 꽤나 유명하다고 하던데 나는 작년에 <엄마 내공>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엄마 내공>을 읽으며 평소 가져온 내 소신과 매우 흡사한 데다 당차고 시원한 필력에 반했었더랬다. 이 책은 스무 살이 된 아이와 함께 엄마를 졸업(?)한 저자가 자신의 인생을 잘 가꾸고 그 안에 양육자로서도 곧게 서 왔던 방법을 전해준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확신을 주는 저자 특유의 단단한 어투 때문일까. 내가 바라던 삶을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줘서 일까. 어느 쪽이든 맞았다. 엄마라면 한 번씩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엄마 이기전에 한 인간으로서 강단 있게 사는 법, 한쪽의 희생이 아닌 모두의 노력으로 가정을 꾸려가는 지혜를 건네준다.



엄마의 세계가 클수록 아이의 세상이 커진다. <엄마의 20년>, 오소희, 수오서재 출판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나를 찾을 것'을 강조한다. 

엄마로, 아내로 사는 삶 말고 나 자신으로 살 때, 나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따를 때 온 가족이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한 여러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는데 솔직히 나는 '뭐 이렇게 까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내 의지대로 뭐든 하며 지내진 못하지만 나는 나의 계획들을 열심히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남편과 우리를 완전한 독립체로 인정해주시는 양가 부모님 덕분에 다행히 자아의 혼란 없이 지내왔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책을 읽다가 깨달았다. 

많은 경우 '이렇게 까지' 유난 떨지 않으면 아이가 독립할 때까지 '엄마'라는 역할에 파묻혀 지내야 한다는 것을.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지." 쉽게 뱉는 말들, "늦게까지 회식하면 아이는 누가 봐?" 남의 가정일에 월권하는 질문들... 저자가 이야기하는 '여자가 양보하지 않으면 모두가 불편한 세상'은 과한 말 같지만 들여다보면 아직까지도 소름 돋게 우리 사회에 들어맞는 말이다. 나 역시 아이를 낳고 키우며 자신감이 떨어지고 능력 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엄마라는 이름 말고 내가 사회에서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 막연해지던 때도 있었다. 저자는 우리 사회 전반을 꼼꼼하게 살펴보며 구조적인 문제를 짚어낸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홀가분히 벗어던지고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걸어 나오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엄마라는 무게에 짓눌려 자신을 잃어버린 여자들을 구출하기 위해 여러 가지 설루션을 제시하는데 나와 아이의 인생을 분리해 생각하는 법을 알려주고, 집안일들을 적당히 외면하고 자신에게 투자할 시간을 가질 것을 권한다. 아주 작은 습관부터 인생의 큰 줄기를 만드는 과정까지 아주 자세하고 유용하게 설명해준다. 거기에 덧붙여 너무 불안해하지 말라고, 죄책감 갖지 말라고 엄마들에게 다정한 위로를 건넨다. 


오소희 : 이 책은 정말 시스터후드(sisterhood)로서 쓴 책이고요. 

주로 그런 책을 집필하시는 분께서 써주시면 참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아이를) 다 키우도록 그런 책은 안 나오더라고요. 엄마를 위로하는 책들은 많아요. 공감을 주려고 하는 책들도 많은데. 여자들은 위로와 공감만을 가지고 체념하면서 살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거든요. 그래서도 안 되고.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말을 해주는 책이 너무 없는 거예요. 20년 동안 저도 기다렸는데. 그래서 마지막에는...

김하나 : ‘안 되겠다, 내가 써야겠다’ 이렇게 되신 거군요.

오소희 : 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내가 써야겠다(웃음).

책읽아웃 인터뷰 중 (http://ch.yes24.com/Article/View/41221)




처음에 책 제목을 보고 까마득했다. 

히익-! 엄마 이... 이십 년..!?!? 

제목을 보고는 엄마 노릇이 아직 14년 더 남았다는 약간의 막막함이 밀려왔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는 개운하고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라는 이름의 당신, 당신의 인생은 소중합니다. 당신에게 기회를 주세요. 돈을, 시간을, 열의를, 당신을 성장시키는 데 쓰세요. 당신을 든든히 지켜줄 당신의 세계를 가꾸세요. (중략) 10년 뒤 그 몇 배가 되어 당신 가정을 풍요롭게 할 거예요." 

익히 생각해왔던 것이지만 실천이 쉽지 않았던 것들. 

더 시게(?) 시작해봐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왠지 모를 활기가 돈다. 나도 아이도 남은 14년 더 멋지게 크기를 기대하며..! 


남편은 책 뒤표지에 쓰인 발췌 글을 보며 굳이 넌 안 읽어도 되는 책 같다고 웃었다. 

"엄마, 그대가 가장 소중하다."

암요. 그러다마다요. 헤헷.




<밑줄 긋기>


자식 대학으로 엄마 능력을 증명하는 구닥다리 자랑질은 신사임당이 5만 원권을 차지했을 때 박수 치고 끝내야 했습니다. _ 31p


사람들은 엄마들에게 '끝났다'고 쉽게 말합니다. 이제 혹이 달렸으니 재미는 다 봤다고. 여행 같은 건 생각도 말라고. 천만에요. '엄마'라는 자리는 제대로 여행하는 법을, 제대로 세상과 관계 맺는 법을, 월반하듯 깨치게 해주는 자리입니다. 여행만 엄마들을 월반시킬까요? 임신, 출산, 육아라는 강도 높은 '인생 수업' 과정에서 엄마들은 어마어마한 인류애적 성장을 합니다. 넓어지고 깊어지고 따스해지죠. 그 성장은, 엄마가 이후에 무슨 일을 하든 거대한 자산이 되어줍니다. 


엄마라는 자리는 끝이 아닌, 시작입니다. _ 54p


우리 여성들이 이렇게나 일과 육아를 오가며 슈퍼우먼처럼 애쓰고 있음에도 여지껏 이 사회는 그 노동에 대해 그 어떤 온당한 정의도 내리지 않았어요. 종종 직장맘은 애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여자로, 전업맘은 남편 등골 빼먹는 여자로 묘사되곤 하지요. 마치 남성 중심의 이 사회는 선언한 것 같아요. 너희 여성들이 어떤 역할을 맡든(남자들이 못하는 '출산'빼고는) 제대로 된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으리라! _ 135-136p


지금 하면 됩니다. 언제나 답은, 지금이에요. '지금'은 결코 늦는 법이 없어요. _ 165p


우리는 매일, 자신에게 어떤 감정 상태를 선사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_173p


돈 계산은 '나가는 돈의 크기'를 재는 게 아니라, '돌아오는 가치의 크기'를 재는 거랍니다. _ 177p


사실 우리가 일하는 이유는 두 가지예요. 의미를 얻든지, 돈을 벌든지. 두 가지가 같이 있으면 가장 좋고, 둘 중 하나만 있어도 계속해나갈 이유로는 충분합니다. _ 191p


누군들 미래를 알겠어요? 모든 '가능성'을 걱정의 묘지에 파묻어놓고 마냥 우울해하는 건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_ 193p


'나만의 세계'를 지닌 나는, 그렇기에, 자식을 위해 할 일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의 다름을 인정하기! 


나는 내 친정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내 꿈을 자식에게 얹지 않습니다. 내 꿈을 남에게 얹을 필요가 있나요? 이미 내가 원하는 활동을 찾아서 하고 있는데. 


또 나는 희생의 대가로 아이들을 내 감정의 펀칭백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럴 필요 있나요? 이미 돈과 시간을 쓰며 나 자신을 잘 돌보고 있는데. _ 2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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