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바다에는 돌고래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돌고래를 보는 건 왠지 행운의 상징처럼 느껴졌는데, 그건 너도 나도 봤다는 돌고래를 나는 제주에 산 2 년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해안도로 쪽을 달리다 행운의 돌고래 떼를 만났다. 근사한 일몰을 무대 삼아 경쾌하게 점프하는 돌고래들은 아름답고 자유로워 보였다.
아이는 우와 우와 감탄을 했고 나와 남편은 이 장면을 놓칠세라 스마트폰을 들어 이렇게 저렇게 찍었다. 정신없이 찍다보니 돌고래는 물결들 사이로 사라졌다.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늦은 여름의 늦은 오후. 빛이 깊어지는 시간이었다. 한차례 해수욕을 하고 허기진 배를 달래며 식당으로 향하던 길, 그렇게 돌고래를 만나고는 뜻밖의 선물을 받은 듯 마음이 방방 뛰었다.
돌고래 영상을 SNS에 올렸다. 우와, 멋있다, 덕분에 나도 좋은 구경했다는 댓글이 달렸다. 돌고래라니 신기해.
그런데 돌고래 영상을 여러번 다시 보고 있자니 왠지 남이 올린 것처럼 생경 하게 느껴졌다. 저걸 내가 진짜 봤던가? 어떤 느낌이었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말 감명 깊게 봤다면 이렇게 여운이 없을 수가 있는데. 나는 그토록 보고 싶던 돌고래들을 작은 네모 화면으로만 만났던 것이다. 영상 속에서 아이는 끊임없이 말을 하고 있었다. "와 점프했다! 바다 봐. 바다도 색깔 엄청 예뻐." 나와 남편은 별다른 말이 없다. 아마도 망망대해에서 점프하는 돌고래를 조준하여 카메라를 들이대기 바빴을 것이다.
눈으로 볼 걸. 내가 찍어온 영상은 다른 이들의 SNS에서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물을 잔뜩 머금은 붓으로 칠한듯한 연분홍 하늘도, 점프의 생동감도 화면으로만 느낄 수 있었다.
이 작은 네모는 내 생활을 거의 점령하고 있다. 과장을 보태자면 오감을 앗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훗날엔 이런 질감들까지 기계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휴대폰으로 내 존재를 증명(?)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나는 작은 네모 밖의 나를 얼마나 느끼고 사는가. 이게 정말 속박의 문제라면 이제는 의지를 가지고 참아볼 생각이다. 가만히 넋을 놓고 무언가를 바라본 적이 언제였을까. 이름 지을 수 없는 색으로 시시각각 물들어가는 노을 앞에서, 경탄하지 않고는 못 배길 아름다운 광경 앞에서 네모난 화면을 들어 올리지 않고 그저 바라보는 일을 조금씩 연습해보려 한다. 우습다. 별게 다 연습이 필요한 현대 인간이다.
산책을 하며 노래나 방송을 듣는 편인데 우연한 공백에 새소리가 들려오면 바보가 된 기분이 든다. 이런 소리를 놓치고 길을 걸었다고? 바람에 잎 나부끼는 소리, 새소리를 놓치고 여유를 찾아 떠난 산책이라니. 역시나 우습다.
이 우스운 현대인은 조금씩 독립(?) 운동을 해보려 한다. 절연은 못하겠지만 부디 스마트한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시작의 첫 단추.
잘 가 (가지 마) 행복해 (떠나지 마) 같은 느낌으로 이별 선언을 해본다.
오늘의 과제: 스마트폰 없이 멋진 가을을 만끽하며 한 시간 산책하기. (와, 되게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