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팔 벌려 온 세상을 맞는 아이들처럼

by 잠전문가

“아~ 캠핑 또 가고 싶다.”

집에 오는 길도, 등원 길도 아니었다. 며칠 전 아이는 캠핑장에 앉아 이런 말을 했다. 캠핑에 와서 너무 좋고, 집에 갈 생각에 벌써 아쉽다는 말을 이토록 함축적이고도 애절하게.


따뜻한 햇빛과 선선한 공기, 몸을 둘러싼 모든 질감이 풍요롭게 느껴지는 가을이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선명하던 초록들은 이제 적당히 노르스름해졌고, 바람결에 흔들리는 억새는 마법 같은 은빛으로 풍경을 뭉갠다. 반짝이는 모든 것, 곧 지나갈 이 계절을 벌써 아쉬워하며 캠핑에 또 가고 싶다던 아이의 말을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을 아이처럼 온전히 누리고 싶다는 생각에 바다가 보이는 산책로 계단에 앉아 잠깐 숨을 고른다. 반짝이는 바다의 잔물결을 바라보다가 오 분도 채 되지 않아 여러 가지 생각들이 맴돈다. 오후에 해야 할 일, 곧 있을 이사… 휴대폰을 들어 아름다운 가을 바다를 찍어 SNS에 올리기도 하고 돌아가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보기도 한다.




‘멍을 때리고’ 싶었다. 영어로는 Space Out 이라고도 한다는데… 멍하게 있는 일도 쉽게 되지 않는 걸 보니 어지러운 이 세상만큼 내 머릿속도 어지러운가 보다. 지금 이 순간을 잠깐도 붙잡지 못하고 앞 일, 뒷 일에 긍긍하는 내 모습이 아쉽다.

지금이라는 순간 속에 충분히 녹아드는 아이. 어떤 다른 생각도 없이, 온전히 순간에 충실한 아이가 부럽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서, 누군 이렇고 누군 저렇고 비교하느라 제 삶을 깊게 바라보기 힘든 세상에서 오직 아이들만이 저마다의 충만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만 같다. 땅의 볼록 나온 부분을 괴물 집이라며 괴물 집 열쇠를 찾아야 한다고 온갖 나뭇가지를 찾아 헤매고, 종일 놀고 지는 해를 뒤로 하고 집에 가자고 해도 조금밖에 못 놀았다고 울상을 짓는다. 눈을 떠 잠드는 순간까지 하루를 이토록 살뜰히 누리는 존재가 또 있을까.


육아를 하며 아이들이 얼마나 놀라운 존재인지 깨닫곤 한다. 세상 모든 것에 대한 몰입, 철학적인 질문들, 순간을 충만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집중력… 나이를 먹을수록 이 ‘아이다움’은 동경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동네 어르신들의 눈빛은 그리 따스하고도 빛나는 걸까.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가듯이 바라보라.
그리고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

_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중에서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귀여운 잎이 달린 귤을 먹으며, 짧아진 바짓단에 다리를 넣으며, 저녁이면 낮 동안 펼쳐둔 꽃잎을 다무는 꽃을 보며 눈을 빛낸다. 세상엔 신기한 것 투성이다. 돌아서면 콩나물처럼 자라난 제 몸도, 길가의 돌도 모든 것이 신기한 아이가 아름답다.


이 가을, 언제나 ‘지금 여기’를 사는 아이를 떠올린다. 왠지 무궁무진하게 퍼지는 바이러스 말고는 모든 것이 멈춰 선 듯 무기력한 2020년. 하지만 이런 가을에도 아이들은 두 팔을 벌리고 온 세상을 맞는다. 모든 감각을 동원해 찰나의 순간을 즐긴다.

매일 화수분처럼 샘솟는 호기심 주머니를 들고뛰고 웃으며 하루를 충만히 채우는 아이들. 짧아서 애틋한 이 계절, 매일 뜨고 지는 해를 아쉬워하는 아이처럼 하루하루 아쉬운 마음으로 살고 싶다. 만물이 태어나는 듯 아침을 바라보고, 죽어가듯 저녁을 애달파하면서. 모든 것에 경탄하는 여섯 살 현자와의 시간을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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