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작은 액정 속에 뭐가 있길래

아기와 나, 스마트폰은 한몸이었다.

by 잠전문가

아이를 낳고 체력의 소모, 감정 널뛰기 외에도 나를 힘들게 하는 게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헤엄치기’였다. 아이를 낳아 키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만사가 걱정이었다. 수유하며, 재우며 핸드폰을 쥐고 끝없는 검색을 했다. 세상에 갓 나온 아이와 나, 그리고 핸드폰 우리는 한 몸이었다.


맘카페, 육아매거진, 로켓이 배송해준다는 쇼핑몰… 수유텀은 얼마가 적당한지, 쪽쪽이는 보통 뭘 쓰는지, 분유는 어디가 싼 지 지문이 닳도록 검색을 했다.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것에다가 하나의 고단함을 더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유텀이야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며 아이가 알아서 만든다. 쪽쪽이는 아이마다 선호하는 유형이 다르며 안무는 아이도 있다. 백 원, 이백 원 더 싼 분유를 찾는 일이 그 수면 박탈기의 잠보다 귀하랴!)


아무리 피곤해도 일단 뛰어든다, 첨벙!



괜찮아 어차피 내일도 피곤할거야.


나는 아이가 자는 동안에도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느라 더욱 피곤해졌다. 정보는 더 많아지고, 신박한 육아템은 끝없이 나왔다. 출시된지도 얼마 안 된 육아용품에 ‘국민’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나왔다. 오늘의 육아가 힘든 것은 왠지 저 국민 육아템이 없어서인 것만 같았다. 이건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좋고, 그런데 이건 몇 개월까지 밖에 못쓰고, 이유식 용기는 이게 좋고… 이건 광고인가 직접 구매한 리뷰인가 구별하는 섬세한 정보처리과정까지 거치고 나면 아주 머리가 팽팽도는 것이었다.


아기 건강상의 궁금증이나 사야 할 것들만 찾아봤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불행히도 나의 엄지는 주인 성격과는 달리 몹시 근면했다. 비슷한 시기에 아이 키우는 지인들의 SNS를 들여다보며 “자유부인 찬스”, “통잠” 따위의 태그가 달린 사진들에 하트를 누르며 시샘에 꿀렁이는 뱃살을 어루만졌다. 모든 게 아이에 맞춰지고 간단한 외출도 쉽지 않았던 그때, 나의 세상은 아주 좁아져있었다. 작은 휴대폰 액정 속 세상이 나를 집어삼켰다. 친정 부모든 시부모든 육아 지원군이 있어 좋겠다, 저 집은 애 키우는 집이 왜 저리 깨끗할까, 저 장난감 나도 사고 싶다… 사정 없는 육아, 뭐 하나 어렵지 않은 육아가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땐 단편적인 사진과 몇 마디 글, 그 너머를 생각하기엔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자주하는 '애 옆에서 애 사진 보기' 이런 아이러니 또 없습니다...


거침 없는 엄지의 행보, 이대로 괜찮은가


나의 찌질함을 대대적으로 고백하자니 무지하게 민망하다. 하지만 육아에 지친, 적지 않은 엄마들이 그 작은 휴대폰 액정 속으로 속절없이 빨려 들어가고, 그 안에서 외로움과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리라 생각한다.


엄마들이 인터넷에 의지 (혹은 과몰입) 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활동이 심히 제한된 상황에서 이 간단한 '엄지 활동'은 나를 어디든 데려다주고, 뭐든 이야기해주니까.

육아 24시, 주 5일 때론 월화수목금금금 아이와 전쟁을 치르다 보면 어디든 손 뻗으면 닿을 곳에 있는 휴대폰이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 때론 위태롭게 했다.


아이가 이제 다섯 살, 영유아기를 지나고 나니 인터넷 육아정보에도 조금은 심드렁해졌다. 중요한 것은 나와 아이의 합. 아이의 취향과 아이에게 맞는 병원, 상황별 방법들… 결국 겪어봐야 했던 것들이다. 내가 필요했던 것은 인터넷에 기정사실화 되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것들이 아니라 나와 아이가 만들어가야 할 백과사전이었던 것이다.


SNS? 얼마 전 "좋아 보이던데..?" 하는 친한 언니 말에 "SNS가 이렇게 위험합니다, 예." 하고 대답했다. 이사 온 후 어린이집 자리가 없어(제주도는 다산의 섬인 게 분명해!) 30개월 이후로 해본 적 없던 몇 개월간의 가정보육이 느닷없이 시작됐고, 아이와 나는 실로 오랜만에 지지고 볶고 울고 치대는 사랑과 전쟁 중이었다. 그 작은 네모창 안에 담기는 사진들은 정말 일부며 찰나였다. 아이가 크고, 내 생활을 환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니 남들이 올리는 것도 적당히 보고, 적당히 생각하게 되었다. 깨끗한 집을 봐도 '깨끗한 부분을 찍었겠지...' 하며.


다시 생초보 엄마 시절로 돌아간대도 동동거리며 휴대폰 속 작은 세상에 매달릴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나에게 한마디 할 수 있다면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때로는 그것들이 너를 더 조급하게 하고, 우울하게 할지도 모른다고. 적당히 도움 받고, 적당히 외면하기를 바란다고.

조금 느리더라도, 조금 부족하더라도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아이와 나만의 엉거주춤 2인 3각을 즐겨보는 것, 그것이 육아의 즐거움이라고 말이다.


(여전히 영혼없는 엄지로 피드 내리며 하트 누르고 있는 건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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