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단상 _ 결핍의 결핍시대에서

by 잠전문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 중에 '100층짜리 집' 시리즈가 있다. 지하로 백 층, 바닷속으로 백 층, 하늘로 백 층... 일층부터 백층까지 이어지며 각기 다른 동물들의 방이 등장하는, 읽어주기 목 아프지만 보는 재미가 있는 기발하고 아기자기한 책이다. 아이도 이 책을 좋아해 이따금씩 읽어주는데 어느 날은 작가 이와이 도시오의 소개 한 대목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도시오, 이제 장난감은 사주지 않을 거야."

어렸을 때, 작가의 어머니는 어느 날 장난감 결제 보이콧을 하셨다고 한다. 어린 도시오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져 내렸을지, 천원샵만 가도 눈을 빛내며 황홀해하는 우리 집 꼬마를 떠올리면 그 마음을 통렬히 공감할 수 있다.

작가 인터뷰를 보니 그때부터 뭐든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공작 책을 보면서 여러 시도를 하고 그게 습관이 되어 뭐든 직접 만들면 되니까 장난감이 없어도 괜찮다 생각하게 됐다고.


"그렇게 하나둘 직접 만들다가 결국 이렇게 작가가 된 것 같아요. 저한테는 엄청나게 큰 사건이었는데, 정작 어머니는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조차 기억 못 하시더라고요.(웃음)"




뭐든지 만들면 되니 괜찮다고 생각하는 어린이라. 어쩐지 멋지지 않은가.

사실 요즘 '이런 거 있을까?'하고 검색하면 뭐든 있다. 장난감 시장은 방대하고도 방대하다. 전에 키즈카페에서는 다이슨 무선 청소기 장난감이 실제 가전제품과 너무 흡사해 놀란 적이 있다. 장난감은 더욱 세련되고 멋스러워지고 있다. 각종 키즈 채널에서는 어린이들을 호로로 홀려버리는 장난감들이 해맑은 얼굴로 엄마 아빠들의 주머니를 털고 있다.


사실 요즘의 어린이들은 (아니 예전의 어린이들도 돈만 있으면) 뭐든 가질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런 아이들을 보고 '결핍의 결핍'이라고 느낀다면 과장일까. 가질 수 있으면 갖고 하고 싶은 것은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에게 간절함이란 게 있을 리 없다. 우리 집 어린이 역시 친구가 발레 다니는 게 부럽다며 본인도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 발레를 등록했다. 육 개월 정도 다녔던가. 그전까지는 스무 살까지 발레를 배울 거라던 아이는 친구가 그만두자 본인도 발레가 싫어졌다며 그만 다니겠다고 선언했다. 그 후로 나는 아이가 배우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에 대해 쉽게 허락하지 않기로 했다.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시간을 두고 확인하며 아이의 요구에 신중히 응하려 한다.


장난감도 어린이날과 생일, 크리스마스 외에는 이유 없이 사주지 않고 다만 일주일에 2 천 원이라는, 입장에 따라 다소 박한 용돈을 줌으로써 소소한 소비를 경험하게 해주고 있다. 뭘 그렇게 깐깐하게 구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내 소비 가치관이자 육아 철학이다. 아이가 커서 어떻게 자기 돈을 유용하며 살아갈지는 본인의 몫이지만, 적어도 독립 전까지는 본인에게 사용되는 비용이 노동의 값진 대가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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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원한 아이의 책상에 놓인 무언가를 보았다.

아이가 어디서 스티커 메이커라는 것의 존재를 들었는지 내내 구상을 했었나 보다. 어제저녁 꼼지락꼼지락 제 방에서 뭔가를 하던 아이의 책상에는 '스티커 만들기'라고 쓰여 있는 것이 놓여있었다. 돌돌 말린 코팅지를 보니 '출력되는 스티커'의 이미지를 구현해낸 듯하다. 기특하고 귀엽다. "엄마 나도 그거 사줘."가 아니라 골똘히 생각했을 작은 얼굴을 떠올리니 흐뭇하다. (흐뭇한데 이런 거 마이 쌓이면 마이 괴로운 엄마의 이중자아)


이것은 아끼는 일이기도 하지만 늘리는 일이기도 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어찌해보는 경험, 다른 방법은 없을까 생각해보는 경험,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경험을 말이다.


아이의 책상을 바라보며 인터넷 쇼핑몰 곳곳에 내가 열심히도 넣어둔 장바구니를 떠올린다.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필요할 것 같은' 것들이 꾸역꾸역 힘겹게 담겨 있다. 없는 총알 바라보며 한탄 그만하고 나의 생각과 마음을 다시 바라본다. 제한 많은 코로나 시대, 자꾸만 늘어나는 것은 체중과 소비다. 가뿐한 봄만큼 가뿐해져야 할 텐데. 물욕에 부예진 눈을 비비며 꿈뻑꿈뻑 초점을 맞춰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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