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함께 하는 행운

by 잠전문가

"마지막은 가장 당부하고 싶은 점입니다.

당신의 아이는 (당신이 어린 시절 받았던) 당신의 상처를 치유해주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아이를 '나보다 훨씬 훌륭하고 귀한 손님'으로 대해야 할 것입니다."

_ <스스로 마음을 지키는 아이> 중에서



육아를 하며 많이 떠올리는 구절 중 하나다. 나를 위해 이 땅에 내려온 천사. 이 말을 떠올리면 복잡다단한 육아 생활에 많은 위안이 된다. 아이와 함께하는 내 인생이 얼마나 축복된 것인가 감탄하게 된다.

엉덩방아를 찧으면 털어주고 달래주고, 무서워하면 안아주고, 마음이 슬플 때 토닥여주는 주는 건 늘 엄마 몫이니 혹자는 육아란 '일방적인' 케어를 하는 셈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아이의 조그마한 손으로, 반짝이는 눈으로 내게 건네는 치유와 용기는 엄청나게 크다.


아이는 내가 글을 쓰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냥 쓰는 게 아니라 글밥을 먹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다. 동네 소식지나 서평 등으로 약간의 용돈은 벌어봤지만 그것으로 나의 직업을 규정짓기엔 몹시 부족하다. 나 스스로 그렇게 느낀다. 글쓰기를 즐겨하고 문장이 어느 정도 정리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들. 하지만 아이는 나를 작가라고 불러준다.


씩씩하게 걷는 작은 등을 보면 괜시리 숙연해진다. 나도 씩씩하게 살아야지.


어느 날은 학부모 상담주간이라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유치원에서 아이의 생활과 교우관계 등을 전해 듣다가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이 표현력이 너무 좋아서 작년 담임 선생님께 부모님에 대해 여쭤보니 어쩐지 글을 쓰신다고 했다고. 어버버 하다가 해명도 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부풀려진 말(?)에 눈앞이 캄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엄마가 바라는 삶을 인정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마웠다. 아이는 한치의 의심 없이 순수하게, 내가 가야 할 길을 규정해주고 있었다. 머쓱하게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당장 내가 객관적으로 결과물이 없다 해도, 나는 그 과정에 서 있다. 아이가 그런 나를 알고 이미 미래의 내 모습을 의심 없이 그리고 있다. 이 순전한 믿음 앞에 내가 어찌 뒷걸음질 칠 수 있겠는가. 어쩌면 어디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내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는 그렇게 요란스럽지 않지만 묵직한 믿음으로 나를 일으켜 세운다.


"나도 열심히 하다 보니까 구름사다리 세 칸까지 가잖아!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야 돼."

남편과 글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면 어느새 옆에 와서 본인의 경험을 빗대며 독려하는 나의 천사. 엣 헴- 뿌듯한 목소리로 어깨를 쭉 펼친 채로.





아이의 귀여운 응원으로부터 힘을 얻는가하면 때로 내가 아이에게 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스스로 위로받기도 한다.

"괜찮아. 누구나 잘하는 게 있고, 못하는 게 있어. 네가 잘하는 것도 엄청 엄청 많잖아."

아이가 다른 누군가를 부러워할 때, 본인의 역량을 아쉬워할 때 사람마다 잘하는 것이 다 다르니 실망하지 말라고. 네가 잘하는 것도 엄청 엄청 많지 않냐고 늘 위로해주는 편이다.


초보운전 n년차. 여전히 주차를 몹시도 헤매던 터. 출근 전에 남편에게 주차 연수를 부탁하고 아침마다 하는 데 쉽지가 않았다. 차가 삐딱하게 섰는지 일자로 섰는지, 핸들을 좌로 돌려야 하는지 우로 돌려야 하는지, 모두의 평화를 위해서는 그냥 운전대를 포기하는 게 낫지는 않을지... 정신이 혼미해지는 데다가 설상가상 들어오는 차나 나가는 차가 기다리고 있으면 심장이 벌떡거리고 호흡이 가빠지며 운전석에 앉은 사람들이 다 눈으로 욕을 하는 것 같아 보인다.

삼십 여분 간의 주차 연습을 마치고 머리를 쿵쿵 치며 답답해하자 남편은 그렇게 말했다. 네가 아이한테 자주 하는 말 있지 않냐고. 너도 잘하는 게 있고 못하는 게 있다고 생각하라고. 속상해하지 말라고.


그렇다. 예로부터 공간과 방향감각이 심히 뒤떨어지던 나는 코엑스에서도 길을 잃고 반나절 방황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잘 못하는 분야이니 계속해보는 수밖에 없다고.


사전 상의 육아의 '아'자는 아이 아(兒)이지만, 여러모로 나 아(我) 일 때도 많다.

아이를 기르고 나를 기르는 일. 육아하며 나는 많은 순간 용기를 얻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아이는 나를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작은 천사임이 분명하다. 아직 X꼬 닦아줘야 하는 천사. 잔소리하면 구미호 저리 가라 눈 치켜뜨는 내 천사. 너와 함께 하는 것이 행운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육아단상 _ 결핍의 결핍시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