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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Apr 27. 2021

가끔은 먼 발치서


아이 유치원에서는 일 년에 두 번 상담전화가 걸려온다. 선생님께서 아이의 원 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주시는데 그럴 때마다 가슴이 얼마나 콩닥콩닥 뛰는지, 마치 나에 대한 평가를 받듯 입이 바짝바짝 말라온다. 다행히 걱정할 부분이 하나도 없다고, 모든 부분 수월하게 잘하고 있다는 선생님의 격려와 함께 통화가 끝났다. 그리고 엄마로서 걱정되는 한 두 가지 문제를 말씀드리니 원에서 워낙 잘하고 있으니 집에서라도 편하게 응석 부리며 지내게 해 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휴-

안도의 한숨과 함께 드는 생각. 요 놈도 사회생활이라는 걸 하는구나.

아이는 생각보다 잘 해내고 있었다. 나도 밖에선 멀쩡한 척, 건실한 척 하지만 사실 집에선 코도 파고 엉덩이춤을 춘다. 혼자 있을 땐 티브이를 틀고 밥을 먹기도 하고, 고단한 밤 소파에 누운 모양새는 거의 흐르는 액체 수준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살면서, 왜 아이의 생활 태도는 그렇게 걱정을 했던 걸까. 티브이를 조금만 오래 보면 엄한 얼굴을 하고, 밥 먹다 말고 일어나 춤을 추면 밖에서도 그럴까 염려했다. 이거야말로 삼십 년 일찍 태어났다고 내로남불 하는 것이 아닌가. 나나 아이나 그저 하찮은 우주 먼지일 뿐인데, 몇 년 더 구른 먼지가 신상 먼지 얼차려 시키는 꼴이랄까.


엄마의 끝없는 걱정은 유치원 가방에 달린 곰돌이인형처럼 네 곁에 달랑달랑


아이도 커 가면서 제 체면을 세우고 사회적 약속을 지키는 법을 알았다. 집에서는 까짓 응석받이 좀 하면 어떻다고, 좀 편하게 지내면 어떻다고. 언젠가 했던 억울함을 토로하던 아이의 말이 생각났다. "엄마는 규칙 쟁이야! 맨날 약속만 정해."

조그만 어깨에 커다란 가방을 메고 씩씩하게 사회로 나가는 아이의 등을 보며 잠시 미안해졌다. 나라도 조금 더 넉넉하고 부드러운 베이스캠프가 되어야 할 텐데...


겉으로 보면 참 착하고 성실하고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사회인인데, 속으로는 엄하고 박한 양육자 아래에서 억눌린 내면 아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관계도, 일도 훌륭히 해내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큰 구멍 하나가 뚫려있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늘 긴장되고 고단하지만 늘 자신이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그런 어떤 것. 전 국민의 육아 멘토 오은영 박사는 최고의 육아란 '마음 편한 아이'로 길러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우리가 그토록 외쳐대는 '행복'이라는 것도 결국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는 것, 마음이 편한 것이다. 마음 편한 아이로 키워내려면 어떡해야 할까. 아무래도 내 마음부터 편히 먹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끔은 아이를 먼발치에서 바라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시도 있지만, 아이는 해가 지날수록 땅에 단단히 뿌리내려 바람도 비도 견뎌내는 나무처럼 자라난다. 가까이에서 보이는 잎과 가지의 작은 상처로 그 나무가 병들었다고 하지 않듯이 나도 때로는 가까이 보이는 흠결에 동동거릴 것이 아니라, 멀리서 의연하고 단단하게 자라나는 아이를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아이가 아주 어렸을  별의별 것들이  위험해 보였다. 유리컵,  닫힐까 걱정되는 , 언제 상처를 낼지 모르는 얇은 종이... 아이는 자랐고 이제  염려도 어느 정도 거두어야  . 탈피하는 애벌레처럼 아이의 성장에 따라 엄마도 시기마다 뭔가를 벗어던져야 하는 때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지가 않다.



+ 어제 아이는 반 친구들이 많이 있던 놀이터에서 혼자 놀았다. 괜히 쓸쓸해 보이고, 친구 사이에 문제가 있나 싶어 신경이 쓰였던 나는 집에 오는 길에 물었다.

"오늘 왜 혼자 놀았어?"

"아, 애들이 공벌레 잡고 노는데 난 공벌레 잡기 싫어서."


아, 심플하다.

너는 아무렇지 않게 혼밥 하는 아이로 크겠구나. 싫은 것을 꾹 참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사람은 되지 않겠구나.

아이는 이제 자기만의 기준을 가진 사회인이 되어 가는데, '아기 엄마'라는 옷을 탈피하지 못한 나는 오늘도 괜한 염려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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