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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Jun 16. 2021

너와 나는 이제


아이는 병설유치원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학교 운동장에서 곧잘 논다.

철봉과 구름사다리, 미끄럼틀. 요즘은 원숭이처럼 어디든 매달려 있는 시즌이기 때문에 시소와 미끄럼틀뿐인 유치원 놀이터보다는 학교 놀이터를 몹시 애호한다. 아이들은 놀기 바쁘고 엄마들은 벤치에 하릴없이 앉아 있다. 언제부턴가 그런 상황이 갑갑해졌다. 시간이 아깝고 지루하다. 그래서 나는 운동장을 돌기 시작했다. 이어폰을 꽂고 즐겨 듣는 팟캐스트를 들으며 헛둘헛둘 걸었다. 자유시간엔 운동을 좀처럼 할 수 없는 의지박약인이라 이왕 나온 김에 운동장을 걷기로  것이다. 운동장  구석의 놀이터를 예의 주시하며 걷는다.  바퀴,  바퀴 놀이터 앞을 지날 때마다 아이는 손을 흔들어주고 나는 친구들과 놀고 있는 귀여운 모습을 찍는다. 때론 장난스럽게 지켜보고 있다는 액션을 취한다. 손가락  개로  눈과 아이 쪽을 향해 차례로 뻗으며.




이제 곧 초등학생이 될 아이는 친구들과 엄마 시야에서 자주 벗어나 논다. 걸을 때도 일부러 나보다 한참 앞서 걷는다. 다리는 행진하는 군인처럼 척척, 높이 묶은 말총머리는 꼿꼿하게 편 등에 도도하게 튕기며 일정한 박자로 흔들린다. 제 나름의 야무짐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것 봐. 나 이제 어디든지 혼자서도 잘 가.

엄마의 도움보다 신뢰가 필요한 나이가 된 것일까. 손을 잡아주고 들어줘야 했던 아기는 이제 없다. 아이가 자랄수록 나는 보호자에서 친구가 되어간다. 아직까진 어디든 같이 있는 친구. 곧 각자의 생활을 하고 저녁에 만나 밥을 먹고 각자의 방에서 잠드는 친구가 되겠지.


그래서 걸었다. 너는 너대로 놀고, 나는 나대로 운동을 하고 싶어서. 수영을 배운 것도 그런 것이었다. 아이가 물놀이하는데 지켜만 보고 있는 건 지루하고 시시해서. 나도 놀고 싶어서. 아직 평영도 마스터하지 못한 애송이지만 그럭저럭 물에 뜬 소금쟁이 정도는 될 수 있다. 바다에 둥둥 누워 하늘을 보고 바람도 느끼는 풍류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같이 놀고 또 각자 놀다가 집에 돌아와 오늘 좋았지, 하는 것이 좋았다. 같이 나눌 수 있는 것이 많아진다. 자라남의 기쁨.


오늘 아침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나를 기다리다가 먼저 걷기 시작한 아이.  멀리서 따라가고 있는데 커브길로 사라지자마자 훌쩍거리며 되돌아온다. 미끄러져서 넘어졌다고. 예쁜 원피스를 오랜만에 꺼내 입었는데 엉덩이가 흙투성이다. "엄마  잡고 가면 좋았잖아." 나는  해도  말을 했다. "넘어지면 넘어지는 거지 ." 훌쩍일 때는 언제고 시원한 대답이 왠지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조금  일은 그새 잊었는지  룰루랄라 빨리 걷기 시작하는 아이. 그저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손을 놓고 멀리 가는 아이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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