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잠전문가 Jun 14. 2021

아이를 싫어한다는 말



"저는 아이를 싫어해서..."

흔하게 하는 말이자 듣는 말이다. 그리고    내가 많이 하고 다닌 말이기도 하다.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던 본인은 후에  먹다가도 화장실 가서 아이 엉덩이를 닦아줘야 하는 육아인의 삶을 살게 되었다.

이제 나는 아이를 싫어한다거나 좋아하지 않는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그건 내가 아이를 낳고 변해서, 아이들이 좋아져서가 아니다. 그저 그것이 잘못된 표현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이를 싫어한다'는 말은 '노인들을 싫어한다'보다는 훨씬 흔하고 일상적으로 느껴진다. 후자는 혐오적인 표현 같고 심지어 패륜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전자는 뭐, 한 사람의 기호 정도로 여겨지는 것이다. 비 오는 날을 싫어하는 것처럼. 낚시를 싫어하거나 록 음악을 안 듣는 것처럼.


아이: (명사) 나이가 어린 사람.

방점을 사람에 찍어본다. 그렇다. '아이'라는 단어는 그저 '노인', '중년', '청년' 같이 인생의  시절을 지나는 사람들을 뜻한다. 아이를 우리가 아닌 어떤 것처럼 정색하며  떼내어 어디 갖다 놓을  없는 것이다. 어린이는 우리의 과거이자 이미  사회의 시민이다. 그런데 '아이를 싫어한다' 말은 아이를 마치 자신과  부분도 겹치지 않는, 생경하고 이질적인 존재처럼 여기는  같다.


물론 어린아이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특성, 예를 들어 여과 없는 언행과 귀찮은 참견 미숙한 감정처리와 많은 실수들이 상대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 나 역시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며 우는 아이의 모습을 견디기 힘들었던 시절이 있다. 그때 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의 글을 읽고 울고 떼쓰는 아이를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바로 전두엽에 관한 설명이다.

언어기능, 감정 조절, 논리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은 영아기부터 사춘기에 가장 활발하게 성장하며 이십  중반에 이르러서야 안정기에 접어든다고 한다. 어른의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감정적이고 산만한 모습은 아직 전두엽이 작은 아이들에게 자연스러운 행동이라는 것이다. 특히 아주 어린아이들의 경우  수준이 파충류와 비슷할 정도라, 뇌구조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싸우거나 도망치는  밖에   없단다. 머릿속에서 굴려보지 못하고 바로 반응하는 단계라고. 울고 화내고 웃고... 어른들이 보기엔  다이내믹한 감정 널뛰기라고 고개를 저을  모르겠지만 사실은 나름대로 자기감정을 단단하게 만들어가는 어린이들만의 속사정이 있는 것이다.


'어린이를 싫어한다'는 말에는 일반화의 오류도 있다. 모든 어린이들이 충동적이고 파괴적이거나 세상이 끝난 것처럼 울고 정신없이 굴지 않는다. 매너 좋고 점잖은 노인이 있는가 하면 나이로 온 세상을 다 이기려 하는 고집스러운 노인도 있다. 기질부터 성장 정도, 교육 유무까지 여러 변수에 따라 아이들의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개인의 사정이지, 그것이 꼭 한 집단의 사정은 아니다.


찬거리를 사들고 집으로 가는 길. 돌고래 괴성을 지르며 세상 요란하게 놀다가도 세상 끝난 것처럼 우는 아이들이 있는 대환장파티의 놀이터를 지나며 생각했다.

'나는 이제 곧 학부형이 되는데도 아이들의 저런 모습들이 적응되지 않는구나.'

이 생각은 '그럼 나는 아이를 부정하는 것인가'로 이어졌고, 결론은 당연히 그렇지 않았다. 성장 과정에서 보이는 별난 모습들은 여전히 내게 어렵고 부담스럽다. 하지만 그것은 자라나는 모습. 아이는 존재 그대로 인정받아야 할 존재다.




영어권에서는 "아동에 대한 공포(두려움)를 뜻하는 페도포비아(Peaophobia)라는 단어가 있다고 한다. 아마도 아이의 정제되지 않은 행동과 통제되지 않는 상황을 겪으며 생겨날 확률이 크다. 그렇다면 정제시키고 통제할 누군가가 그 해결의 키를 쥐고 있다. 끝없이 아이를 가르치고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타인에게 피해 끼치는 일에 민감해야 할 사람, 부모에게 전적으로 달려있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아동 혐오 = (무책임하고 방관적인) 부모 혐오일 수 있겠다는 비약과 함께.


아이 엄마인 나도 때로 아이들이 정말 귀찮고, 너무 시끄럽고 때로는 무섭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표현들이 열 개 스무 개 모여도 '아이들이 싫다'라고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를 몇 년이나 키우다가 이제야 이 말의 불편함을 느낀다. 나도 수없이 쓰던 말이다.

사람은 참 자기 자신을 열심히 사랑해서 내 몫의 불편함만 느끼고 살기 쉽다. 이제 겨우 어린이들의 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사소하고도 사소하지 않은 말을 찬찬히 돌아보다가 다짐한다. 사람을 세워두고 코 앞에서 문을 쾅 닫는 말은 하지 말아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지안이네 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