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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Jun 08. 2021

지안이네 집


<윤미네 집>. 아이가 심심하면 같이 보자고 펼쳐 드는, 무척이나 좋아하는 책이다. 고 전몽각 선생이 생전에 살뜰히 가족의 모습들을 찍어놓은 사진 모음집인데, 생활감이 묻어나는 자연스러운 장면들과 가족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따뜻한 시선이 그대로 느껴져 나도 참 좋아한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엄마, 소풍 다녀오는 길에 입을 벌린 채 세상모르게 잠든 아이들, 새 교복을 입은 날... 가족의 한 시절이 가득 들어있는 이 책이 주는 감동은 볼 때마다 새롭다.


지안이네 집.

유치하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책의 이름을 따서 최근 사진집을 하나 만들었다. 아이의 일곱 살 생일 기념으로.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 지금까지 쌓인 사진은 대부분 스마트폰과 노트북에 있었다. 장소와 인물, 찍은 시간도 같지만 표정만 미묘하게 다른 사진이 수십수백 장이다. 립스틱을 주야장천 사대는 친구가 '하늘 아래 같은 핑크 립은 없다'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왠지 다 똑같아 보이는 사진도 엄마에게는 각각 다르게 특별하기 때문이다. 이건 울음보 터지기 직전의 얼굴이라 순간포착의 느낌이고, 저건 와앙- 하고 울음을 터뜨린 얼굴이라 너무 귀엽기 때문에 어느 하나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러다가는 파일에 압사당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 백업을 해두지 않았다가 휴대폰이 완전히 고장 나 특정 시기의 동영상을 다 날린 적도 있었기 때문에 물성을 가진 어떤 것이 필요했다. 마침 아이는 내년부터 학령기에 접어들기에 이참에 영유아기의 모습들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사진을 선정하는 기준이 몇 개 있었다.

사는 동네나 집 풍경이 잘 드러난 사진. 엄마 아빠, 친구들 외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는 사진. 같이 콩나물을 다듬거나 세수나 산책을 하는, 일상이 자연스럽게 담긴 사진. 삐졌거나 울거나 폭소하는 등 다양한 감정이 담긴 사진... 물론 아이의 첫 생일에 비싼 돈 주고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을 비롯해, 배경이 깨끗하고 구도가 좋은 '사진을 위한 사진'도 많았지만 위의 기준에 부합하는 사진들을 더 많이 넣었다.


아, 어릴 때 살던 집 거실에 커다란 야자나무가 있었지. 놀이터 한편에 유치원 가방을 들고 앉아 학교놀이를 했었지. 저 멍멍이 인형은 언제 어디서나 들고 다녔구나. 아빠랑 밀가루 반죽해서 빵도 참 많이 만들었지...

아이는 사진을 보며 이렇게 읊조릴게 될까. 거대한 파일 더미 속을 뒤지며 책에 넣을만한 사진을 고르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뭉클했다. 유년시절의 기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애틋함을 선사한다. 내가 아이가 된 것처럼 가슴이 벅찼다.


장난감이 지저분하게 널려있는 집, 이상한 구도 같은 것은 개의치 않았다. 예쁘고 정갈한 사진보다 그날의 우리가 담겨 있는 것이 중요했다. 대단히 좋은 집 좋은 것을 누리며 살지 못해도, 대단히 훤칠한 인물들은 더더욱 아니어도 그저 살을 비비고 웃고 울고 때론 화를 내며 살아가는 이 시간들을 모아보니 봐줄만하다. 아니, 적어도 나에게는 빛이 나도록 아름답다.


아이의 사소한 말을 자주 기록하고 작은 일상들을 메모하며 틈나는 대로 사진을 찍는다. 내 립스틱을 입 주변까지 벌겋고 칠하고 웃는 사진 속 꼬마를 본다. 이 꼬마도 언젠가는 제 분위기에 맞는 세련된 컬러의 립스틱을 깔끔하게 바를 줄 아는 아가씨가 될지 모르겠다. 그 아가씨와 이 사진을 보며 함께 폭소를 터뜨릴 행운이 모쪼록 나와 남편에게 있기를 기도하며 배달되어 온 사진책을 쓰다듬는다. 희로애락이 얽히고설킨 기록과 기억 사이에서 우리의 연약한 기쁨이 더 단단하게 여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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