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잠전문가 Mar 25. 2022

안스마트한 걱정

스마트폰 없이 스마트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도착하려면 한 시간 넘게 남았는데, 휴대폰 배터리가 없다. 

배터리 잔량을 보니 곧 꺼질 것 같다. 휴대폰에 모든 것이 들어 있는 요즘 시대에 얼마 남지 않은 배터리는 몸속 에너지원이 떨어진 것처럼 손이 떨리고 눈앞이 캄캄한 상황을 초래한다. 

친구들과 사진은 두 장만 찍을 걸 그랬다고, 공항 가는 시간 계산한답시고 지하철 어플을 너무 봤다고 이제와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스마트폰 화면 우측 상단에는 앙증맞은 빨간 네모가 떴다. 이것이 압류 딱지가 아니면 무엇인가. 얼른 충전을 하지 않으면 네 모바일 티켓부터 시계 이용권 및 통화 이용권까지 몽땅 앗아가리!

 

친정에서의 일 박. 짧은 일정이라 무선 충전기 하나만 믿고 챙겨 왔는데 연식이 좀 돼서 그런지 지지부진했다. 급경사를 힘겹게 오르는 똥차처럼 힘겹게 그리고 느리게 휴대폰에 심폐소생술을 하는가 싶더니 충전이 얼마 되기도 전에 먼저 기절해버렸다. 역시 선이 없는 것들은 편리하지만 불안하다. 

비행기를 타려면 티켓을 보여줘야 하는데 이를 어쩌나. 이미 체크인까지 마친 상태라 직원에게 이야기하면 방법은 있겠지만 시간마저 넉넉지 않았다. 

 

스마트 워치도 충전을 하지 않아 꺼진 지 오래였고, 휴대폰까지 꺼지면 시간 맞춰 탑승구로 가는 일 마저 대단한 미션이 될지 모른다. 나는 짧은 시간 안에 묘수를 생각해내야 했다. 그러나 이 조차도 온전히 내 힘으로 하지 못했다. 화면 밝기를 최저로 하고 찔끔찔끔 검색을 하면서 남들은 이런 경우 어떻게 하는지 찾아봤다. 이를 의존 및 중독이 심각하다고 해야 할까 스마트하다고 해야 할까. 

다행히 나는 그 작은 화면 안에서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었다. 편의점에서 일회용 급속충전기를 판다는 정보였다. 공항을 일 키로 앞둔 편의점에서 그것을 발견했다. 커피값과 비슷한 금액으로 이 모든 궁지에서 나를 구해준다니 실로 값어치 있는 상품이었다. 

사자마자 충전을 하면서 공항으로 향했다. 10, 20, 30… 이 기특한 녀석은 이름답게 휴대폰을 급속으로 충전시키고 있었다. 이 와중에 엄마 없이 하루를 보낸 우리 집 어린이는 저녁이 되도록 집에도 안 들어가고 아빠와 버스 정류장 앞에서 대기 중이라는 귀엽고도 부담스러운 소식을 전해왔다. 예매한 제주행 비행기를 목숨 걸고 타야 했다. 다행히 배터리가 40%쯤 되었을 때 직원에게 모바일 탑승권을 보여줄 수 있었고, 착륙 후 공항버스도 시간 맞춰 탈 수 있었다. 고작 한 시간 거리인 김포에서 제주로 가는 일이 이토록 파란만장할 줄이야. 휴대폰 하나에 심장이 벌렁벌렁했던 내 처지가 우습기도 한심하기도 했다. 하긴, 이제 그 휴대폰 하나가 수사의 키 포인트일 정도로 우리 삶에 중대한 존재가 되었으니까. 

 

 

너는 나의 히어로



작년 가을이었나. 한 통신 회사에서 인터넷 통신 장애가 세 시간가량 일어난 적 있다. 나는 서점에서 책을 사던 중이었는데 통신 오류로 카드 결제가 되지 않아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지갑 안에는 단단한 카드들이 위용을 뽐냈지만 그 순간 간절히 필요했던 것은 낡아 빠진 초록색 지폐 한 장이었다. 

서점에서 카페로 이동했으나 이쪽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통신망이 완전히 차단된 것은 아니었는지 다행히 계좌 이체로 계산을 마쳤고 무사히 커피를 마셨다. 한창 점심때였으니 식당, 카페 모든 곳이 혼란을 겪었다. 

그날 오후에는 “@@사의 통신망 장애로 인터넷 통신 및 일부 유/무선 전화가 전국적으로 마비되었다”는 뉴스가 포털 메인에 떠 있었다. 그것도 인터넷망이 복구된 후에야 볼 수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해당 통신사 대표가 인공지능 시대를 선언하고 불과 30 분도 되지 않아 발생했다는 점이 실소 포인트였다. 

 

두꺼비집을 내리면 모든 전기가 차단되는 집처럼, 통신망과 기계가 차단되면 우리는 도대체 뭘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정말 스마트한 세상에 살고 있는 걸까. 

다시 말 타고 한양 가던 시절로 회귀하자는 바보 같은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스마트하고 합리적인 이 세계에서 언젠가 두꺼비집이 내려간 어두운 집처럼 조용하고 무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까, 정말 그런 일은 꿈에도 없다고 자신할 수 있나 문득 안스마트한 걱정이 나를 스칠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민등록 초본을 손에 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