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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Mar 23. 2022

주민등록 초본을 손에 들고

주민등록 초본을 발급받았다.

등본이나 가족관계 확인서는 이리저리 쓸 일이 좀 있지만, 초본은 아주 오랜만이다. 지자체에서 하는 사업에 선정되어 주소지 확인 서류가 필요했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주민센터로 향했다.

세상이 좋아져서 무인 발급기에서 버튼 몇 번 띡띡 누르니 인쇄된 종이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이잉 덜컥 지이잉 덜컥, 두 장이면 될 줄 알았는데 세 장 빼곡히 적혀 나왔다. 남편에게 이 사실을 전하니 혹시 군인 아빠를 두셨냐며 농을 쳤다.

 

전입 이력이 꽤 복잡했다. 그것도 똑같은 동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던 기록들이 주다. 연도를 보니 내가 태어난 해, 그다음 해, 또 그다음 해… 한 해에 두 번씩도 이사했다. 줄줄이 눈으로 훑어 내려가다 문득 엄마가 떠오른다. 사고나 치지 않으면 다행인 남편과 짐을 나르고, 와중에 아이를 챙기는 서른 남짓의 여자. 두 아이의 엄마. 아마도 그 숱한 이사들은 월세가 밀려서 쫓겨났거나 더 싼 집으로 옮겼거나 그도 아니면 남편이 집주인과 대판 싸웠기 때문일 것이다.

 

이사의 고단함을 너무 잘 아는 나이가 되었다.

상태와 가격이 적당한 집을 알아보는 일, 꼼꼼하게 계약사항을 들여보는 일, 집주인에게 나는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 제법 나이스한 세입자임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일, 대망의 짐 싸기와 짐 풀기, 각종 행정 절차와 그 밖의 청소 및 단장…

이 중차대한 행사에 아기가 있다면 또 어떤가. 나도 경험이 있다. 사는 동네가 재개발이 확정되어 주어진 기간 내에 이사해야 했다. 당시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짐을 싣는 동안 나는 아기를 안고 친구네 집에 가서 오전을 보냈다. 아직도 남편은 아기띠를 하고 아침 일찍 길을 떠나던 내 뒷모습을 떠올리며 슬퍼한다. 정작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그날 아기는 내 배에 종일 붙어 있다가, 아직 서지도 걷지도 못했지만 키즈카페 구석에 앉아 시간을 보내다가 이사 온 낯선 집에서 낯설어할 여유도 없이 쌓인 피로에 허겁지겁 잠식당했다. 해도 지지 않은 초저녁이었다.

내 집에서 내 집으로, 또는 남의 집에서 내 집으로 가는 이사라면 기억이 달라졌을까. 우리는 남의 집에서 남의 집으로 ‘또’ 이사해야 했으므로 부랴부랴 둥지를 옮기는 새 가족처럼 분주했고 불안했다. 이사가 일상의 환기라든지 새로운 경험이라든지 그런 여유로운 생각은 사치였다.

 


물론 우리는 어디서든 기쁨을 찾았다. 보물찾기 하는 아이들처럼 옮긴 터 곳곳에서 기쁨을 발견하려고 애를 썼다. 우울한 일과 행복한 일은 어디서든 있었다. 건강한 마음으로 결속한 건강한 가족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천진한 아이처럼 이사한 동네의 근사한 공원이나 맛집 등을 찾아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런데도 2년의 전세 계약 기간이 끝나갈 때면 문득 우울해졌다.


 

제주도로 이사가던 날




지금은 포장 이사도 있고 이사가 예전만큼 어려운 일이 아님에도 한 번 할 때마다 십 년씩 늙는 기분인데 엄마는 어땠을까. 행정구역상 같은 동 몇백 미터 반경으로 이사하면서 용달을 부르기도 애매하지는 않았을까. 연도를 보니 내가 태어난 해에도 한 차례 이사가 있었다.

내가 살아온 세 장 짜리 흔적은 서글프고 또 씩씩했다. 독립하기 전의 여러 전입신고를 보면서는 엄마의 고생이 떠올라 서글펐다. 하지만 독립 후 나의 이사 전력은 신혼, 육아, 새로운 도전 등 삶의 챕터들과 맞물려 기억되면서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씩씩함이 곳곳에 묻어났다. 설렘으로 집 곳곳을 꾸미던 서울의 신혼집은 아주 아주 높아서 도착하면 한겨울에도 땀이 났지만 그만큼 기가 막힌 야경이 있었다. 아기가 아장아장 걷던 경기 신도시의 한적한 길은 조용하고 평화로웠고, 아이가 막 입학한 학교 운동장 너머로는 한라산이 보인다. 어디서든 나름의 즐거움은 존재했고 나는 그 기억을 갈피갈피 알맞게 끼워 두었으니 이사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에게도 이사의 기억이 그랬으면 좋겠다. 가난한 살림살이에 늘 바쁘게 일하고 돌아와 부랴부랴 나물을 무치던 엄마만 떠올라 자꾸만 주민등록 초본의 앞 장이 서글퍼진다. 네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엄마는 엄마 나름의 기쁨을 갈피갈피 꽂아두었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저 고단함 뿐이었다고 하면 궁색한 살림을 나르는 동안 엄마 등에 업혀 있었을 내가 너무 미안해지니까. 끝까지 내 마음 가벼운 게 중요한 나는 그 시절 갓난아기에서 한 치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 또 미안하다.

 

 

덧,

올가을이면 지금 머무는 집의 전세 계약이 만료된다. 자동 연장될지 아닐지 알 수 없는데 속도 모르고 아이는 ‘또 페인트칠을 하고 싶어서’ 이사를 하고 싶단다. 아아 그러지 마. 그런 말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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