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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Mar 17. 2022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인

중학교의 운동장.

휘슬이 울리고 나는 달렸다. 둘씩 짝지어 뛰는 백 미터 달리기였다.

3번은 작지만 날쌘 육상부 선수였고, 불행히도 나는 백 미터 뛰는데 20초 넘게 걸리는 4번이었다. 옆에서 같이 출발한 짝꿍은 순식간에 내 시야에서 멀어지더니 이내 콩알만 해졌는데 왜 내겐 운동장이 평면 에스컬레이터처럼 자꾸만 이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반 친구들과 선생님 모두가 보고 있는 와중에 파트너와 체감상 오십 미터는 차이 나는 달리기를 선보인 후 나를 강렬한 수치심에 휩싸였다.

 

나는 대체로 체육 시간을 저주했다.

투포환을 던지면 발밑에 패대기쳐서 모두를 놀라게 했고, 체력장을 하면 언제나 그랬듯 5급을 받았다. 그나마 피구 시간에는 작은 체구의 장점을 살려 요리조리 잘 피해 다녔는데 막판에는 상대편의 중약슛을 기다리고 있다가 '날 쏘고 가라'하는 심정으로 마음 편히 공을 맞고 나갔다. 반마다 있는 몇몇 피구왕들의 불꽃슛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할 정도니까.

 

줄넘기, 제자리 멀리 뛰기, 농구 등 다양한 종목을 얕게 다루는 체육 수업은 언제나 스트레스였다. 저 멀리서 최선을 다해 달려와 날아올라도 나는 뜀틀 한가운데에 정확하게 착석한 후 무안한 표정으로 내려오기 일쑤였다. 오래 매달리기 시간에는 휘슬 소리와 함께 낙하했다. 내게 체육은 잘 못 하니까 하기 싫고, 하기 싫으니까 안 해서 더 못하게 되는 무한의 굴레였다. 재능 없음이 자명하게 드러났다.

 

그렇게 나는 운동하는 즐거움일랑 한치도 모르고 살았다. 이십 대 때는 다이어트를 위해 띄엄띄엄 헬스장을 다녔는데, 어찌나 재미가 없고 지루한지 매번 몇 달을 채우지 못했다. 출산 후에는 삭신이 쑤셔 요가나 산책 정도의 운동을 했다. 이대로 살다 간 앓아누울 것 같아서 하는 최소한의 운동이었다.

 




그러던 내가 축복처럼 ‘몸 쓰는 일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도보 오 분 거리에 수영장이 있는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오면서부터 말이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아이와 여름마다 바다로, 수영장으로 가야 했던 나는 수영을 배우고 싶어졌다. 약간의 기대와 거대한 두려움으로 초급반 강습을 신청했지만, 초보에도 급이 있었다. 남들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때, 나는 보노보노처럼 킥판을 소중히 안고 물에 둥둥 뜨는 것만 한참을 했다. "물침대라 생각하고 누우세요!" 강사는 이렇게 말했지만 약간의 일렁임도 없는 실내 수영장에서 나는 늘 포세이돈급의 내적 사투를 벌였다.

 

수영을 시작한 첫 주는 거의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다. 집에 들어서면 긴장이 풀리며 온몸이 아팠다. 한 번 나자빠지면 종일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수심 1m밖에 안 되는 수영장에서 빠져 죽지 않기 위해 필사적인 발차기를 하다 보니 물에 떴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오오, 내가 헤엄쳐 이동하다니! 나는 환희에 차 집에서도 공중에 팔을 돌리며 음파 음파를 반복했다. 여전히 운동 신경은 부족해 죠스에 쫓기는 다급한 발차기로 다른 모든 스킬을 커버 치고 있었지만 조금씩 몸에 새겨지는 동작들, 그리하여 나도 모르게 능숙해지는 과정은 말할 수 없이 짜릿했다. 초급반 마지막 주자였던 나는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다 스타트를 끊는 일 번 주자가 되었다.

 

그 외에도 나는 요즘 들어 여러 운동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아이에게 인라인을 사주면서 나도 같이 타기 시작했다. 어릴 적 인터넷 설치 사은품으로 받았던 롤러스케이트를 동네에서 가끔 탔었는데 그때 느낌 그대로였다. 부드럽게 굴러가는 바퀴 위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는 상쾌한 기분. 엄마, 엄마 다급히 나를 부르는 아이를 뒤로하고 휙휙 발을 뻗는 그 시간, 어쩐지 나는 다시 아이가 된 것 같았다.

그런가 하면 널찍한 카페 뒷마당에 놓인 스케이트보드를 우연히 타보고는 완전히 반해서 커피가 다 식도록 보드만 탄 적도 있다. 균형을 잡으며 나아가는 일이, 몸을 꺾어 방향을 바꾸는 일이 어찌나 매력적이던지 세 번을 우스꽝스럽게 넘어졌고 팔꿈치는 까져서 피까지 났지만 개의치 않았다. 남편은 의외로 재능이 있다며 내게 감탄의 눈빛을 보냈다. 보드를 잘 타던 카페의 직원은 내게 '보드는 간지'라고 했지만, 그다음 날 나는 아쉬운 대로 분리가 가능한 아이의 킥보드로 스케이드 보드의 여운을 즐기기도 했다. 어린이용 킥보드 기둥을 뽑고 신나게 발을 구르는 아줌마의 모습은 좀 해괴망측했을지 모르겠다. 뭐 어때, 나는 즐거운걸. 뻔뻔함이 인생을 조금 더 즐겁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중이다.

 

지금 내 관심사는 러닝이다. 러닝 예찬을 너무 많이 들어서 안 그래도 궁금하던 차에 러닝화를 장만했고, 드디어 봄이 왔다. 처음 뛰어보는 사람도 마침내 30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해 준다는 유명한 앱도 미리 받아 놓았다. 나도 뭐 러너스 하이 같은 단어를 가져볼 수 있나 기대하던 중 러닝 5일 차에 위기가 왔다. 온몸에 기력이 없고 감기 기운이 돌더니 목에 멍울이 잡혔다. 임파선염이라는 놈이 나를 가로막았다. "요즘 뭐 피곤한 일 있으세요?"하고 묻는 의사에게 고작 5일 동안 달리기를 했을 뿐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약봉지를 들고 집에 오는 길, 문득 수치스러운 학창 시절 체육 시간이 떠올라 고개를 내저었다. 역시 러너스 하이 같은 건 내가 감히 탐낼 단어가 아니었다. 내가 무슨 운동을 한다고. 운동 신경도 없고 체력도 저질인데. 다시 그냥 살살 산책이나 하자고 생각하려던 찰나 꽃망울이 팡팡 터지듯 발랄하게 나를 두드리던 다양한 '몸 쓰기의 즐거움'이 퍼뜩 떠올랐다. 몸을 숙여가며 보드의 방향을 바꾸고 수 없이 락스 물을 들이켜며 알아버린 자유롭고 생생한 감각은 분명 중독성이 있었다.

그래, 이깟 임파선염이 새로 시작한 러닝을 미션임파서블로 끝나게 놔둘 순 없지! 며칠간의 약 복용과 안정이 끝나면 나는 다시 달릴 것이다. 아직 내가 달릴 길은 넘치도록 남아있으니까.

 

그러고 보면 첫 경험이란 얼마나 중요한가.

어린 시절 평가로 경험한 체육은 불호 그 자체였다. 나는 정규 교육을 마친 후에도 운동이 재미없을 때마다, 또는 내가 잘 못 할 때마다 역시 어쩔 수 없는 몸치라고, 즐거운 운동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교과 과정 중에 빼앗긴 운동의 즐거움을 서른 후반이 되어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아이에게도 몸 쓰는 일의 즐거움을 알게 하고 싶어 열심히 이렇게 저렇게 놀아본다. 지금 한창 즐거우니, 학창 시절의 체육 수업을 원망하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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