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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Mar 04. 2022

글 수만큼의 구독자

삼사 년 전부터 글쓰기 플랫폼에 글을 써왔다. 거창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창 자기주장이 강해지는 네 살 아이와 지지고 볶던 시기, 하루하루 스펙터클한 일상을 보내던 때였다. 어디라도 스트레스를 해소할 공간이 필요했다. 아이를 재우고 나면 지치면 지치는 대로, 우울하면 우울한 대로 솔직한 엄마 일기를 썼다. 재미있었다. 글 쓰는 것 자체로도 해소가 되었지만 인터넷에 올리는 글은 어떤 ‘반응’이 돌아온다는 점에서 계속 쓰게 하는 힘이 있었다. 나처럼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나도 그렇다.” “정말 공감한다.” “눈물이 날 뻔했다.”라는 댓글을 달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공감과 위로를 나누는 느낌이 묘하게 따뜻했고, 운이 좋아 올린 글이 조회수 몇 만을 넘긴 날은 얼떨떨하면서도 좋았다. 


이 글쓰기 플랫폼은 유튜브처럼 구독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다. 생각 없이, 그냥 쓰고 싶어서 쓴 글에 누군가가 위로받고 공감하며 구독도 해준다니! 모든 과정이 신기한 초보 농사꾼처럼 내 글에 달리는 하트와 댓글, 구독 알림이 신기하고 즐거웠다. 등록한 글이 늘어난 만큼 구독자 수도 늘어났다. 신기하게도 내 계정의 구독자는 글 수와 고만고만하게 늘어났는데, 글과 구독자의 숫자가 보이는 정비례 직선이 성실함의 지표처럼 느껴져 그 또한 좋았다. 


글쓰기 플랫폼에서 글을 쓰기도 하지만 다른 이들의 글도 많이 읽었다. 메인 화면에 있는 글, 인기 있는 글, 다양한 주제의 글들… 보면 볼수록 놀라운 솜씨의 작가들이 나타났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이런 유머를! 무릎을 탁 치고 이마를 탁 치다가도 은근슬쩍 구독자를 살펴봤다. 충격. 다들 나처럼 글을 쓰면서 구독자수를 은은히 늘려가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오십 개 안팎의 글로 몇 천 혹은 몇 만의 구독자를 둔 작가도 많았다. 고수는 어디든 너무 많고 당연한 걸로 씁쓸해하고 있는 나 자신이 우습지만 그때는 진심으로 기가 죽었던 것 같다. 


다시 말하자면 삼사 년 전의 일이다. 처음 재미를 붙였던 그때만큼 글을 자주 쓰진 못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내 계정은 더디지만 여전히 글과 구독자 수가 고만고만하게 자라고 있다. 그게 오히려 고맙다. 구독 수를 내 글의 수준이나 깊이의 지표로 보는 건 아니지만 이 정직한 우상향 직선은 글을 쓰는 만큼 무언가가 늘어난다는 안정감을 준다. 딱 내가 하는 만큼 자란다는 신뢰를 준다. 내가 하얀 화면을 다 채우는 만큼, 무수히 지우는 만큼,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만큼 말이다. 


하루하루 글을 쓰다 보니 평생 미워하고 산 아버지의 등이 때로는 조금 섧게 느껴졌고, 몇 달간의 연습 끝에 구름사다리를 건너는 아이를 보며 용기를 얻었다. 성긴 돌 사이로 바람을 흘려보내는 제주 돌담을 보고는 여유롭게 그러나 단단하게 살자고 다짐하기도 했다. 아직 푸릇푸릇한 귤이 마치 덜 여문 나처럼 느껴져 응원을 보냈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에도 작은 글감들이 빛을 내며 말을 걸어왔다. 


여전히 나는 쓰다 지우는 사람이다. 평범한 이야기를 눈에 띄지 않는 문장으로 풀어낼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계속 쓰는 것은 매일 다른 하늘 아래 살기 때문이다. 달라진 하늘에 대해 쓰다 보면 하늘을 올려다보며 사는 사람이 될 것이고, 뭐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일상도 적다 보면 삶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글이 내게 주는 안정감은 그런 것이다. 일상의 작은 조각들을 모으다 보면 조금씩 나아진다고 믿게 된다. 글도, 삶도. 

나의 기쁨과 슬픔은 눈에 잘 띄지 않을지는 몰라도 고유하다. 고유한 아름다움이 들꽃처럼, 매일 다른 하늘처럼 내 삶에 머물렀다. 쓰며 삶을 사랑하게 되었다. 쓰며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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