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당옥수수 철이다.
아삭한 알갱이가 입안에서 톡톡 터지며 달콤한 즙을 내는 환상의 맛. 재작년에 우연히 맛보고는 매년 초여름마다 목을 빼고 기다리는 음식 중 하나다. 가격은 좀 있지만 6월에서 7월 잠깐 나오기 때문에 안달복달하며 열심히 사다 먹는다. 거부할 수 없는 고급 강냉이.
올해도 열심히 사다 먹는다. 마트에서 사 먹고, 인터넷으로도 주문해 먹는다.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먹는 것에 무감한 편에 속했다. 배만 채우면 속 편한 스타일이라 특별한 레시피라거나 제철 음식 같은 것엔 별 관심이 없었다. 물론 지금도 먹는 것을 위해 부지런을 떠느냐, 귀찮으니까 적당히 허기를 때우느냐 택하라면 역시 후자다. (이런 나를 엄마와 아내로 둔 아이와 남편에게 잠시 묵념...) 다행히도 먹는 것에 진심이고 요리도 꽤 잘하는 남편을 만나 맛있는 음식을 자주 먹으며 내 미식 세계도 차츰 확장되고 있다.
남편의 덕도 있지만 내가 제철 음식을 제법 즐기게 된 또 다른 공은 제주도에 있다. 몇 해 전 제주로 이사오고부터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각 계절마다 잡히는 어종이 달라 요즘은 어떤 생선들이 잘 나가는지 마트 수산코너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감귤류도 어찌나 종류가 많은지 가을부터 나오는 극조생감귤, 겨울에 나오는 조생감귤, 늦겨울부터 봄까지 나오는 한라봉과 천혜향 등 시기마다 다양한 품종을 즐길 수 있다. 겨울이 되면 어머님이 맛있다 하셨던 레드향이 언제쯤 나오더라 하고 작년의 주문내역을 들춰본다. 한치 철이 돌아오면 "한치가 이런 맛이구나!" 깊은 깨달음을 얻은 듯 맛있게 드시더니 그 많던 초고추장만 깨끗이 비웠던 손님이 떠올라 웃는다.
제철인 것들. 제철이라 귀한 것들을 즐긴다.
아직 먹는데 찐심(진심보다 찐한)까지는 아니지만 제철의 먹거리를 즐거운 마음으로 챙긴다. 많은 사람들이 이토록 제철을 즐기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함께 하는 날들, 그 잡을 수 시간들을 기억하기 위해 우리는 지금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을 찾아 먹고, 지금 딱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다닌다.
'리미티드 에디션'이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잘 팔린다. 때를 놓치면 살 수 없다는 희소성 때문일 테다.
작년에 양가 두 엄마들의 김장김치를 택배로 받고 생각했다. 언제까지 이 택배를 받을 수 있을까. 언제까지고 연로하신 어머님들의 김치를 받아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김치를 통해 두 분의 안녕을 확인하는 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리미티드 김장김치. 리미티드 어린이. 리미티드 우리 세 가족...
그런 것들을 떠올리다 보면 울적해지기도 하지만 기운을 내 열심히 제철을 즐기도록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같은 말을 아끼기 위해. 제철을 즐겨야만 빠르게 가는 시간을 기꺼이 보내줄 수 있다.
초당 옥수수와 커피를 먹으며 양가 부모님께도 한 박스씩 옥수수를 주문해 보냈다. 인형들에게 밥을 차려준다고 장난감을 실컷 어질러놓고 간 딸의 아침 흔적을 바라본다. 귀여움이 제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