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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Jul 01. 2022

잠 못 드는 아이 옆에 누워

아이는 누운 지 한 시간이 넘도록 잠들지 못했습니다. 감기에 걸려 잠들만하면 가래기침이 터져 나오는 데다가 낮에 본 ‘보이스 피싱 사기범 잡는 검사’ 편 인터뷰를 보더니 자꾸만 무서운 꿈이 나올 것 같다더군요. 나참, 그거 조금 본 걸로 악몽을 꿀 것 같다니. 하긴 순한 맛 유아 만화, 심지어 타요와 뽀로로 조차도 갈등구조가 있어 잘 못 보는 이 심약한 어린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토닥거려도 보고 자장가를 틀어주기도 했죠. 그래도 자꾸만 무서운 꿈과 기침이 아이의 잠을 방해했습니다. 잠들기가 힘들다며 울먹이는 아이 등을 두드리다가 조근조근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했습니다. 생각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것들을 듣다 잠들면 기침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좋은 꿈은 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말입니다. 아쉽게도 이야기를 맛깔나게 지어내는 능력이 없어 우리가 겪어온 기분 좋은 순간들을 조근 조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최대한 나른하고 몽롱하게 말이죠. 어서 육아 퇴근을 하고 소파에 널브러져 책도 보고 기분이 난다면 맥주라도 한 캔 하고 싶은 금요일 밤이었으니까요.


지안이와 엄마 아빠는 벚꽃 피는 봄에 도시락을 싸서 공원으로 소풍을 갔습니다. 사진도 많이 찍고 개울에 발도 담갔습니다. 지안이는 신이 나서 크게 웃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공원에  가보니 이번엔 벚꽃이  떨어진 자리에 새빨간 버찌가 열린 아니겠어요? 지안이는  버찌를 따고 뭉개서 엄마와 물감 놀이를 했답니다.

여름엔 또 어땠는지 아세요? 바다에 풍덩 들어가서 튜브를 타고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물고기와 꽃게를 잡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제주에는 정말 놀랍고 멋진 것들이 많았습니다…”


봄부터 겨울까지 쫙 훑고 또 연령순으로 기억나는 일을 쫙 훑고도 뒤척여서 약간 피로해지려고 하는 순간 아이가 이런 말을 합니다.

“엄마 말이 너무 재미있어서 잠을 못 자겠어. 캠핑도 그렇고 다 재미있는 일밖에 없어.”

그러더니 돌아누워 코를 골기 시작합니다. 간간이 터져 나오는 기침에 등을 몇 번 두드려주다가 갑자기 마음이 슬퍼졌습니다.




유독 어린아이들의 죽음에는 폭우를 퍼붓는 먹구름 아래 선 기분이 듭니다. 특히 어른들의 실수나 잘못된 판단에 의해 저버린 아이들의 죽음 앞에선 비를 주체할 수 없이 맞아버린 비참한 마음입니다.

알지 못하는 이의 삶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을 보태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고 세상을 떠난 아이가 너무 가여울 뿐입니다.


아이가 학교에 체험학습 신청서를 내면서 친구들에게 가족여행을 자랑하지는 않았을지, 들뜬 마음으로 여행지에 대해 검색해보거나 알아보진 않았을지 자꾸만 그런 모습이 상상되어 끝없이 가라앉습니다.


아이에겐 좋은 순간이 많았을 것입니다. 또 앞으로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모든 일이 행불행으로 또렷이 나눠지지 않는 게 삶이고, 또 지겹고 고단한 일들 사이로 웃음과 눈물이 스며드는 게 인생이니까요. 그 모든 것을 단숨에 빼앗긴 삶에 분한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비참한 마음과 애도의 마음으로 나의 아이 옆에 누워 멍을 때리는데 아이가 또 컥컥 기침을 하고 “엄마 고마워. 잘 못 자게 해서 미안해. 사랑해.” 하고 돌아눕습니다.

그들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었을 겁니다. 더없이 다정하고 뭉클한 시간들이. 못다 핀 아이를 내내 생각하다 또 기침하는 아이를 토닥이다 밤이 깊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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