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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May 12. 2022

고등어 두 마리 전갱이 여섯 마리

바람도 잔잔하고 하늘도 청명한 완벽한 날씨. 우리는 배낚시를 하러 차귀도로 향했다. 낚시를 해 보고 싶다는 아이의 요청에 예약해둔 터였다. 첫 낚시에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도착한 포구에는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뽀얀 오징어들이 총총 줄에 널려 있었다. 마치 웰컴 가렌드처럼. 배를 처음 타 보는 아이는 한껏 들떠 폴짝거렸고 우리는 신이 난 엉덩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이미 충분한 만족감을 느꼈다.



여기까지가 딱 좋았다.

왜 하필 배낚시였을까. 고깃배 한 번 안타 본 녀석들이 겁도 없이, 멀미약도 없이.

친절한 선장님이 건넨 손을 잡고 올라탄 배에서 나는 지옥을 맛봤다. 배에 타서 낚시 포인트까지 달리는 약 십여 분 동안만 제정신이었다. 나머지 한 시간 이십 분가량은 수면 마취 이후의 일처럼 흐릿하다.

미끼를 끼우는 일이 멀미의 발단이었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배에 서서 작은 바늘에 작은 새우를 끼우다 보면 속이 울렁울렁했다. 남편도 나도 초반에 몇 마리 잡고는 더 이상 배에 서 있을 수도 없었다. 힘이 쪽 빠진 팔다리와는 달리 뱃속에선 온갖 장기들이 격한 헤드뱅잉을 하는 듯했다. 우리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앉아 저 먼바다에 시선을 둔 채 멍을 때렸다.



낚싯배에는 우리 말고도 여러 팀이 탔다. 커플, 친구, 가족…. 그 중엔 우리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소녀도 있었다. 그 소녀는 우리 옆자리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잡았다! 잡았다! 이어지는 월척 소식에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 옆에서 유일하게 멀미하지 않았던 우리 집 어린이는 혼자 배에 서 있었다. 자리에 거의 눕다시피 한 나는 눈까지 질끈 감은 채 사경을 헤매던 터라 그 뒷모습이 얼마나 처연했는지는 미처 보지 못했다. “어휴, 우리 딸래미는 아저씨가 도와줘야겠다.” 하며 잠시 아이를 돌봐주신 선장님의 목소리만 꿈결처럼 들려올 뿐.

‘얼른 정신을 차리고 아이 옆에 서서 신나게 물고기를 잡아야 해.’ ‘한껏 기대하고 온 애를 실망시킬 순 없어!’ 이성의 목소리가 호소했고 나는 가까스로 아이 옆에 섰다. 그리고 잠시 구역질을 하다가 다시 널브러졌다. 내 생애 이토록 지독한 멀미는 처음이었다.



그 와중에도 우리는 용케 전갱이 다섯 마리와 고등어 두 마리를 잡았다.

멀미 시작 전 조금, 그리고 해롱거리며 조금. 워낙 많이 잡히는 곳이라 그런지 다른 팀들은 우리보다 훨씬 많이 잡았지만 뭐 어쨌든 창백한 부모와 고독한 어린이팀에도 수확이 있었다.

포구 앞에는 잡은 생선을 맡기면 회, 튀김, 해물탕 등으로 요리해주는 식당들이 늘어서 있었다. 너무 지쳐 요리를 기다릴 힘도 없고, 무엇보다 바다 비린내에 질려버린 우리는 얼른 차에 타고 싶었다. 오늘의 수확을 꼭 튀겨서 집에 가져가고 싶다는 아이를 양심도 없이 설득했다. 끝내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었던 아이의 뜻을 따라 반쯤 나간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은 채 식당 앞에서 튀긴 생선을 기다렸다. 



짓궂은 하루는 끝까지 호락호락하게 우리를 보내주지 않았다. 차를 탈 때만 해도 몰랐는데 멀미 기운이 남았는지 남편은 주행 중에 갑자기 술에 취한 기분이라고, 느낌이 이상하다고 해서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이 사람아, 운전대 잡고 그런 소리 말게… 

하늘이 어두워지는 저녁 무렵이었고 어디 정차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아이와 나는 남편의 입 속에 과자를 가차 없이 집어넣었다. 씹어! 씹고 제발 정신 붙들어 매!



우리는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늦어진 시간에 허겁지겁 찬 밥을 데우고 튀겨온 생선과 간장을 식탁에 올렸다. 아이는 놀라울 정도로 많이 먹었다. 밥을 두어 번 더 먹고 전갱이는 가져온 여섯 마리를 거의 다 먹었다. 그리고 샤워를 하면서 내게 물었다.

“엄마, 불멍처럼 배멍이라는 것도 있어?”






이 차귀도 배낚시는 무려 재작년의 일. 그러나 늘 분기별로 회자되는 우리 가족의 웃음 버튼이다. 아이에게 몹시 미안했고 상당히 엉망진창이었던 우리였지만 여전히 떠올릴 때마다 웃음이 난다. 낚싯배를 볼 때마다, 마트에서 전갱이를 팔 때마다, 낚시꾼들을 볼 때마다, 그냥 문득 생각날 때마다.

어린이만 홀로 세워두고 초점 없는 눈빛으로 멍때리던 우리, 운전하는 남편의 입에 필사적으로 쑤셔 넣던 과자, 아이가 그날 저녁 허겁지겁 먹어 치운 전갱이 여섯 마리…



며칠 전 지역 커뮤니티에서 이런 글을 보고 다시금 차귀도 배낚시가 생각났다.

“동네 어린이날 행사 A에 갔던 줄이 한 바퀴 반이라 B 행사에 가니 주차만 삼십 분, 결국 바다에 왔는데 여기가 천국이네요.”

빙긋 웃음이 났다. 잔뜩 신이 난 아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며 초조해하다가 결국 바다에 도착해 천국을 만난 글쓴이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너무 잘 아니까. 마음과는 다르게 자꾸만 꼬이는 날이 있다. 난데없이 세로로, 기둥 끄트머리로 위태롭게 쌓이는 젠가 조각처럼. 어어 이게 아닌데 하면서 어찌어찌 쌓여가는 하루.



그래도 잘해보고 싶었던 그날의 마음은 어떻게든 힘을 내어 기억을 즐겁고 아름답게 바꿔 놓는 걸까.

자주 엉망인 나는 머릿속 조작 시스템의 자비에 기대어 그럭저럭 살아간다. 내 안의 슬픔이를 달랠 우당탕 웃음 버튼을 만들어가며. 



우리집 어린이는 이 일을 어떻게 기억할까. 부디 ‘최악의 체험 베스트 3’ 따위에는 오르지 않았으면. 

호호 웃으며 지난 일을 떠올리다가 갑자기 좋아하는 가수의 좋아하는 노래 한 구절이 떠올라 가슴 한 켠이 스산해진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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