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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Aug 11. 2022

노을 사냥

노을을 멍하니 바라본 적이 언제였더라.

어린아이를 키우는 내게 선셋 타임은 그다지 로맨틱하지 않다. 어린이의 취침 시간은 아무래도 어른보다 꽤 이르기 때문에 부지런히 식사 준비와, 식사, 뒷정리, 샤워를 마쳐야 한다. 그 후 간단히 놀거나 책을 읽고 잠자리를 준비하고 스무스하게 꿈나라로 유도한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고 아무리 말해도 오늘이 가는 게 아쉬운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유난히 노을이 예쁜 날이었다.

밥 먹고 베란다에 있는 냉장고에 반찬을 넣으면서 올려다본 하늘은 어느 때보다 선명하고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야, 오늘은 솔직히 나가야 해. 내 안의 목소리가 말을 걸어왔다. 갑자기 나는 내일도 해가 뜬다는 사실을 잊은 아이처럼 마음이 간절해졌다. 후다닥 식탁과 싱크대를 치우고 행주까지 탁탁 털어 널은 후 신발을 신었다.

“엄마 나갔다 올게!”


싱크대 앞에서 한바탕 했음을 짐작게 하는, 배 부분이 흥건히 젖은 티셔츠를 입고 한 손에는 꽉 찬 음식물 쓰레기통을 들고 노을 사냥에 나섰다. 킥보드를 타러 같이 나갈지 말지 고민하는 아이를 두고 그냥 집을 나섰다. 아이 외출 준비를 하염없이 기다리다가는 새빨간 하늘이 곧 보랏빛으로 저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완벽한 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더위가 한풀 꺾인 초저녁의 공기 속에서 나는 내가 되어 걸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산책도 좋지만 홀로 걷는 길은 당연히 더 자유롭다. 킥보드를 타는 아이와 걸으면 앞을 봐라 조심해라 옆으로 비켜서라 입에서 잔소리가 끝없이 나온다. 두 발로 걷는 산책은 코스가 조금만 길어져도 힘들다 다리 아프다 우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터덜터덜 조용히 혼자 걸으며 탐스럽도록 빨간 하늘을 바라본다.


낮은 집들 위로 넓게 펼쳐진 하늘은 제주에 사는 낙이다. 지지고 볶는 일상을 덮는 한 장의 위로. 그럼에도 대부분의 노을을 놓치고 산다. 다들 그렇게 살겠지. 바쁜 일상이 어른의 조건인 양 노을 한 조각 바라볼 여유도 없이.

예전에는 지는 해를 보며 슬퍼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노을이 왜 슬프지? 황홀한 시간은 너무 짧다는 것을, 아름다운 광경을 보면 눈물이 나기도 한다는 것을 이제야 가슴 아래가 저릿하도록 실감한다.


나중에 시간이 아주 아주 많아지고 노을 볼 여유도 잔뜩 생기면 그땐 또 무슨 생각을 하면서 하늘을 볼까. 노을 볼 여유도 없던 젊은 날을 그리워하게 될까.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미련이 떠오를까.

해가 넘어가면서 낮에는 선명하게 보였던 것들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그림자가 길어진다. 그 검고 기다란 것들이 할 말을 다 하지 못 한 사람처럼 미련 가득해 보인다. 저마다 가슴에 구멍 몇 개씩 안고도 멀쩡한 척 살아가는 우리들처럼.


마음이 개운하지 않은 날들이다. 암 수술 후 항암치료 중이신 아버님, 여기저기 아픈 관절로 당신보다 더 아프신 어르신들을 부축하고 들고 씻겨야 하는 엄마. 이제 정말 그럴 나이가 되었는지 친구들 부모님의 병환 소식도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여름 옥수수처럼 쑥쑥 자라나는 아이와 조금씩 쇠약해지시는 부모님들을 떠올리며 걷다 보니 어쩐지 이런 생각들이 모든 것이 우거진 이 여름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든다.


양가 부모님들은 피어나는 봄과 왕성한 여름과 푸짐한 가을을 지나 어쩌면 고요한 겨울에 접어드시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여름을 떠올린다. 조금 더 매끈하고 탱탱했던 파마머리 젊은 엄마와 마주 앉아 매니큐어 바르던 날을 추억하고, 왕년에 철봉 왕이셨다는 아버님의 단단했을 이두근을 상상한다. 그러다 아차, 아이가 기억할 내 젊은 날은 딱 지금이겠구나 하는 생각에 괜히 푸짐하게 나온 뱃살에 힘을 줘 보기도 한다.




걷기의 마법은 근심을 꾹꾹 밟아 발끝으로 톡 차 버릴 수 있을 만큼 작게 만들어 준다는 것에, 시시한 일을 굴리고 굴려 충만한 기쁨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에 있다. 걷기엔 너무한 날씨가 이어져 요 몇 달 잊고 지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무거웠던 마음은 조금씩 풀어지고 있었다. 강렬한 빨강에서 부드러운 보랏빛으로 저물어가는 하늘처럼.


부모님과의 별것 없는 대화도 아이의 엉덩이춤도, 때론 지긋지긋하게 느껴지는 식사 시간도 오늘 내게 주어진 황홀한 하늘 같은 것. 그저 바쁘다는 핑계로 피곤한 얼굴로 심드렁히 지내기엔 너무 소중한 것들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붉은 저녁놀처럼 아쉽고 아름답게.

매일 밤 잠들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지금 자야 내일 또 신나게 놀지!”라며 회유하던 나다. 아이를 키우며 온갖 아는 척은 다 하고 살지만 사실 아이들만큼 인생의 현자도 없다. 내일도 해는 뜨겠지만 오늘과 내일은 같지 않은걸. 내 몸도 마음도.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집에 오는 길, 제아무리 저녁 공기가 식었어도 아직 말복도 지나지 않았다. 얼굴에 흥건히 맺힌 땀을 훔치며 오늘의 노을을 사냥해서 다행이라고, 노을은 그냥 즐기려야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작정하고 사냥을 떠나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좀 더 자주 노을 사냥을 떠나야지. 비록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흠뻑 젖은 티셔츠 차림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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