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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Feb 08. 2023

굳은 살과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변

친구들을 생각하면 작가들의 저력은, 투고를 하며 우체국 언덕길을 오르던 허벅지 근육에서 오는 게 아닌가 싶다. 

일전에 한 독자가 내게 물었다. 자신이 글쓰기에 재능이 없는 것 같다고. 재능이 없어도 시를 쓸 수 있냐고. 나는 재능이 있어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재능은 뭔가를 잘하는 능력이 아니라 무언가를 남들보다 오래 좋아하는 지구력이라고 생각한다. (102p)

_ <일기시대> | 문보영 | 민음사



얼마전 우리집에 놀러온 손님이 책꽂이에 꽂힌 <애매한 재능>을 보고 책 제목이 슬프다고 했다. 

애매한 재능이라니. 그래 어쩌면 슬픈 제목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하다 말고, 하다 말고. 때로는 '말고'의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하다'로 넘어가길 바라는 마음에 대해 적혀 있다. 위의 인용글에 따르면 '확실한 재능'인 것이다. 하다 말고 하다 말더라도 다시 하다로 넘어갈 수 있는 재능이란 실로 확실한 재능임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우리 집 어린이는 그 여린 손바닥에 생긴 굳은 살과 현란한 철봉 실력을 등가교환했다. 재능이란 그런 것일터. 말랑말랑한 손바닥 따위로는 오래 버틸 수 없다고!


쓰다가 안 쓰는 건 너무 쉽고, 안 쓰다가 쓰는 건 너무 어렵다.

열심히 열흘 쓰다가 좌절한 채 석 달 쉰다. 책상 청소 두 시간 하고 나자빠지던 학창생활의 시험기간과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마음 속으로 씨앗이 날아와 심기면 봄의 흙이 되어 벌렁거리지만 물과 볕을 꾸준히 주는 능력은 여전히 부족해 곧 시들고 만다. 얼마전 인상깊게 들었던 정서경 작가의 인터뷰, <친절한 금자씨>를 쓸 때만해도 '완성만 하자'를 목표로 했단다. 완성할 수 있을 거야. 다 쓸 수 있을거야를 읊조리며. 음. 나는 그 단계에서 늘 미끄러지고 마는데.


일기를 쓰면서 깨달은 것은 사실은 내가 완벽주의자라는 사실이다. 완벽주의자가 이따위로 사는 거야 라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나도 가끔 거울을 보면서 화들짝 놀라니까. 무기력한 표정. 푹 잤으면 얼굴이라도 뽀얄 것이지 시컴시컴해가지고 이마에 아, 코에 몰, 턱에 랑이라고 써 있다. 

'하다 말고 하다 말고 하는 것'에서 '말고'의 단계에 봉착한 내가 너무 한심하면서도, 한심한 부분을 고치려 하기 보다 포기하고 외면하면서 그 기간을 한없이 연장시킨다. 쬐금 하다 말거면 아예 하지를 말어 다 때려쳐의 잘못된 완벽주의 성향이 발현하는 것이다. 게으르다는 말을 참 길고 정성스럽게 주절이고 있다. 


오늘은 날아온 씨앗을 꾹꾹 눌러 종이에, 파일에 써 봤고, 읽은 책도 기록해보았다. 제발 나 자신이 약간의 양심과 약간의 재능을 유지하기를 바란다. 


문보영의 <일기시대>. 

줄어드는 페이지를 아쉬워하며 읽었다. 시인이 이렇게 재미있게 글을 쓰는구나 하며. 시는 재미 없고 어렵다는 편견이 있나보다. 사실 여전히 많은 시들이 내게 그렇다. 

 (작가님, 죄송하지만 그만큼 제 취향이라는 뜻으로 받아주세요.) 또라이 성향을 숨긴 채 멀쩡히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오랜 친구와 나무에 등치기 하면서 수다 떠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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