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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Feb 20. 2023

응원하는 마음

며칠 전 독립출판물을 한 권 샀다.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하고 책을 한 권 낸, 어쩌면 나와 비슷한 상황의 또래 여자였는데 책 제목이 강렬하기도 하고, 나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그 작가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 끌린 듯이 결제했다. 만 원 남짓. 다른 것에 비하면 그다지 값이 나가는 것도 아니지만 책이라는 건 엄연히 공간을 차지하는 물건이고, 이미 책장은 꽉 들어찼으며 책을 한 번 읽고 다시 읽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무척 심사숙고하며 고르는 편이다.

글이 너무 웃겨서 자주 찾아 읽었던 블로거님의 첫 책도 샀다. 웃기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글로 웃기는 사람을 최고로 좋아한다. 그런 그가 꾸준히 올렸던 글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이미 친근하고 소탈한 글솜씨에 많은 팬층을 거닐고 계시지만 그분의 처음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한 권 샀다.


사실 두 책 모두 결제하면서 큰 기대는 없었다. 내용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어쩐지 타격을 받지 않을 것 같았다. 기대보다 더 컸던 것은 응원하는 마음. 읽고 싶은 책, 갖고 싶은 책은 주저 없이 사는 편이지만 이런 결제는 처음이었다. 후원, 응원의 개념으로 돈을 쓰기에는 늘 지갑이 홀쭉했기 때문이다. 마음만큼은 풍성한 장바구니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음료수도 할인할 때가 아니면 선뜻 집어 들지 않는 짠바구니가 된 지 오래다.


다행히 두 권 모두 매력적인 책이었다. 전자의 책은 저자의 마음을 뒤집어쓴 듯 차갑고 뜨거운 마음을 어찌할 줄 몰라 하며 읽었다. 자전적 산문집이라 그가 겪어온 험준한 세월을 감히 짐작하며, 또 그가 지금은 더 행복하기를 마음속으로 바랐다. 후자의 책은 역시나 재미있었다. 블로그에서 읽어온 글처럼 웃기고 통통 튀면서도 따스한 글들이 이어졌다.


누군가를 응원하는 마음이란 이런 것이구나. 내가 한 권 사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하겠냐마는 누군가 작게 주먹 쥐어보는 용기에 0.5%라도 작용한다면. 그런 생각만으로도 참 좋았다.

나도 독립출판을 하면서 작년과 올해 그런 응원을 간간이 받았다. 책 작업 소식에 출간 전부터 사겠다고 미리 말해주는 사람들, 올린 글들에 하트를 누르고 댓글을 달아주는 사람들, 외주를 의뢰하는 매체들, 내 책, 내 글을 읽고 참 좋았다거나 눈물이 났다거나 하는 말들이 한 글자 더 쓸 용기가 되었다. 그런 경험이 한 번 두 번 쌓이니 지독한 내향인인 나도 (온라인에서조차 내향적이다) 열심히 하트를 누르고, 정말 좋은 작업이라고 댓글을 달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결제한다.





사실 독립출판물 제작자가 받는 첫 응원은 작은 서점들의 입고요청이다. 크지 않은 공간을 살뜰히 채워야 할 서점 주인들이 서점의 정체성과 판매율 등을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내 책이 거기 놓이기 때문이다. 그 공간을 허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여러 서점 사장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되었다. 운영이 녹록지 않다는 것도. 어떤 사장님은 독립출판물이 얼마나 수고로이 만들어지는지 알기 때문에 거절하기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나 또한 작은 서점의 고군분투를 알기 때문에 한 권이라도 꼭 사서 나오게 되었다. 이건 뭐 플러스마이너스 제로 같은, 아이들의 물물교환 같은 귀여운 거래다. 시작하는 창작자들, 그리고 동네 서점들은 그렇게 얼마 되지 않는 귀여운 이익을 남기며 각자 품은 의미를 지켜간다.


마음이 박한 나는 그동안 응원을 보낼 줄 몰랐다. 그냥 멋진 것은 감탄으로 끝냈을 뿐. 받아봐서 이제야 알았다. 그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 그 응원이 누군가 더 멋지고 의미 있는 걸 만들게 하고, 지속하게 한다는 것을.

애쓰고 있는 모든 이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나약한 캐릭터가 어떤 계기로 초능력을 얻어 영웅이 되는 히어로물의 클리셰처럼 시작하는 창작자가 초능력을 발휘하는 계기는 누군가가 알아봐 주는 것, 그저 작은 하트와 댓글일지도. 응원받고 응원하는 사이에 멋진 것들이 많이 생겨나기를 원한다. 그래서 이야 이거 미쳤는데 하면서 읽고 듣고 볼 것이 넘쳐났으면 좋겠다. 언제까지고 이런 낭만적인 말들을 뇌까리고 싶지만 돈이 있어야 응원도 할 수 있다는 냉엄한 현실이 시꺼먼 저승사자처럼 내 옆에 와 있다.


주먹 쥐고, 재미있게 열심히 하자. 그래서 또 재미있는 것 많이 사 보고 사 읽자. 그것이 나의 또 하나의 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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