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도별 하나씩.
나의 소비 패턴은 거의 그런 식으로 돌아간다. 기능별로 딱 필요한 만큼만 갖춰지면 그럭저럭 만족하며 산다. 옷은 일주일 동안 돌려 입는 티셔츠와 바지 서너 개, 가방은 백팩 하나, 에코백 하나, 각종 경조사에 들 핸드백 하나.
신발도 마찬가지다. 운동할 때 필요한 기능성 운동화 한 켤레, 그리고 교회 갈 때나 아이 데리러 갈 때도 신는 무난한 운동화 한 켤레. 쓰다 보니 묘하게 맥시멀리스트의 자기변명처럼 느껴지는 것이, 여윳돈 없는 내 생활의 배경을 알 것도 같지만… 어쨌든 지금 내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작년에 주야장천 신었던 운동화다.
작년, 남편이 스니커즈를 하나 선물해 줬다. 밝은 갈색 바탕에 빨간 로고, 노란 고무 밑창으로 색감이 경쾌한 빈티지 스타일의 운동화다. 1년 365일 입는 청바지와도 잘 어울려서 거의 매일 신었다.
신발을 고를 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더러워져도 티가 나지 않는 색상'인데, 이 운동화는 바탕색이 갈색이라 빗길을 걸어도, 산을 타도 좀처럼 티가 나지 않는다. 누런 내 얼굴에 23호 파운데이션을 바르는 것처럼 자연스레 흙먼지가 레이어드되니 플러스 점수를 줄 만하다. 나중에 다른 색상으로 한 켤레 더 살까 검색해 보다가 이 운동화의 가장 인기 색상이 '써밋 화이트'라는 사실을 알고 조금 놀랐다.
아무리 빈티지 스타일의 디자인, 오염에 강한 색상이라지만 매일 신으니 신발은 점점 늙어갔다. 뒤축이 무너지고 누추해졌다. 좋아하는 운동화가 너무 빨리 낡아버려서 슬퍼하고 있는 내게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원래 신발은 여러 켤레 두고 돌려 신어야 오래 신는대."
생각해 보면 되게 당연한 말이다. 돌려 신으면 그만큼 한 신발 당 사용 횟수가 줄어드니까 덜 낡을 수밖에. 나는 미친 듯이 쓰고 다 닳아 없어지면 새로 주문하는 사람. 애용하면서도 닳는 걸 슬퍼하는 사람. 아니, 이렇게 간단하고 당연한 원리를 왜 이제야 알았을까? 등잔 밑이 어두웠다.
남편 말을 들은 후 같은 모델, 다른 색상을 한 켤레 더 샀다. 마침 시작한 브랜드 세일과 10% 생일 할인 쿠폰 덕분에 조금 편한 마음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역시 좋아하는 것을 오래 곁에 두려면 좀 아껴 써야겠지.
뭐든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파는 나는 운동화를 한 켤레 더 주문하자 마음이 놓였다. 하나만 붙들고 사는 것은 그 하나를 낡고 닳게 한다. 운동화만 그럴까. 사람도, 꿈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꿈과 사랑을 운동화 돌려 신기처럼 하겠다는 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숨 쉴 구멍, 지속 가능한 장치들을 마련해두어야 롱런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사랑해도 적당히 떨어져 지내는 시간,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가 있어야 그 관계에 신선한 공기가 드나들고 편안해진다. 사랑은 두 사람 품 속의 풍선 같아서 너무 큰 압력이 가해지면 펑하고 터지기 마련이니까.
마음속에 간절한 제1의 소원이 있다 해도 그거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지 않는다. 1과 비슷한 1.2, 1.3 안을 마련해 두고 두루두루 소망한다. 그래야 꾸준히 1을 좋아할 수 있고, 1 곁에 있을 수 있으니까. 누군가는 한 가지에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미쳐야 뭔가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하지만 세상 일은 미친 듯이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그게 내 소원 1 이 아니라는 법도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운동화를 오래 신는 일이지, 미치게 좋아한 나머지 구멍을 내버리는 일이 아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지속가능성에 별표를 친다. 지속가능성은 초반 러시를 이긴다. 초반 러시라는 말은 있지만 올 타임 러시라는 말은 없지 않나. 그럴 수 없으니까. 그래서 두루두루 지치지 않을 장치를 마련한다. 이거 안 돼도 그만이야, 대안은 많아. 하는 기분으로. 세상에서 제일 빠른 러너를 부러워하기보다 물도 마시고 꽃도 보고 마주치는 사람들 인사도 하면서 천천히 달리고 싶다. 느리게 그러나 계속.
내가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은지 그리고 그것들을 오래오래 곁에 두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마인드맵 그리듯 생각의 줄기가 뻗어 나간다. 나이 드는 것의 좋은 점은 조급증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어릴 땐 뜨거운 마음이 넘쳐서 빠르게 소망하고 빠르게 절망하곤 했다. 이제는 타오르고 사라지는 것보다 오래 존재하는 것, 오래 사랑하는 것이 더 어렵고 귀한 것임을 안다. 그러기 위해 최선과 차선과 차차선 차차차선까지 두루두루 물을 준다. 이게 비겁하고 행복한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