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잠전문가 Mar 14. 2023

완벽한 쇼핑을 위한 험난한 여정

쇼핑하는 건 피곤한 일이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선택지가 있고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가성비 좋은 상품을 골라내는 것이 최상이겠으나 아무리 전자두뇌 정 총무처럼 암산을 때려도 그 쇼핑의 성패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터무니없이 비싼 제품은 많지만 반대로 이유 없이 싼 제품은 거의 없지 않나. 싼 맛에 옳다거니! 하고 샀다가 엉성한 물건을 받아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언제나 허기진 통장이 내 멱살을 잡고 외친다. "이봐, 정신 차려! 좋은 건 결코 싸지 않아!"


화장품을 몇 개 샀다. 쓰던 것들이 똑 떨어져서는 아니며 그전에 쓰던 화장품은 죄가 없다. 놋그릇이 당장에 조선백자가 될 수는 없겠지만 뭐라도 문대면 좀 화사해질까 싶었을 뿐이다. 선크림이나 바르면 다행인 사람이지만 이런 나도 가끔은 윤기 나는 쌀밥 피부 가져보고 싶은걸.


그러나 역시 쇼핑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나는 팩트형 파운데이션을 사기 전 며칠간 상품 검색과 리뷰를 독파하고 고심 끝에 하나를 골랐는데 그 제품을 선택한 이유는 건조하지 않다, 자연스럽게 잘 발린다는 평 때문이었다. 배송된 화장품을 발라보니 케이크 시트 위에 생크림을 올린 듯한 느낌이었다. 피부에 자연스럽게 스미기보다는 얼굴 위에 상아색 아크릴 물감을 얹은 기분이랄까. 진하고 건조했다. 되직한 상앗빛 액체는 점도, 여드름 자국도 커버해 줬지만, 눈가와 코 밑 잔주름 사이사이에 끼어 나를 더 늙어 보이게 만들었다. 늙음을 그냥 두면 늙어 보일 뿐이지만, 애를 쓰면 부자연스럽게 늙어 보인다는 사실을 추가로 알게 되었다.


재주 없는 내 손이 문제인 걸까. 외출이라곤 가물에 콩 나듯 지인을 만나는 것과 교회에 가는 것, 그 외엔 동네 산책, 아이 학교, 도서관밖에 없는 내가 쓰기엔 좀 부담스러운 베이스였다. 분명 촉촉하고 자연스럽다고 했는데? 건성 피부가 쓰기 좋다고 했는데? 얇게 잘 발린다고 했는데? 리뷰를 하나하나 읽어보고 샀으나 소용없었다. 역시 쇼핑은 피곤한 일이다.





이쯤 되면 말자 말어 하는 게 인지상정이건만 피곤해하면서도 이렇게 돈 쓰는 데에는 열심이다. 굴하지 않고 하나를 더 샀다. 두 번째 제품은 예전부터 눈여겨보았지만, 후기 자체가 많지 않고 쇼핑몰 랭킹에도 없는 제품이라 망설였던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그저 촉촉하고 자연스럽다는 상품 설명과 참숯 불가마를 하고 나온 듯 투명한 피부의 모델 사진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제 리뷰며 평점 같은 것도 믿을 수 없고 그저 내 촉과 반반의 가능성만 안고 가야 한다. 그렇게 두 번째 결제를 마치고 로켓처럼 배송되어 온 화장품은 생각보다 좋았다. 수분크림처럼 아주 얇게 발리면서도 자연스럽게 피부톤을 올려줬다. 화장한 티가 거의 안나는 제품이라 칙칙에서 칙하나 뺀 정도의 피부로 만들어주었지만, 그 정도만 되어도 좋았다.


두 번째 쇼핑이 만족스러워서 남들은 또 어떻게 생각하나(!) 좀 찾아봤다. 나 같은 사람도 있었지만 바른 건지 만 건지 티도 안 난다, 발랐으나 바르지 않았다 같은 평도 있었다. 쇼핑을 하거나 맛집을 찾을 때야말로 인간의 개별성을 절절히 실감한다. 사람들의 취향은 어찌나 이렇게 다양한지. 맛있다더라 하는 집에서 애매한 기분으로 배를 채우고 나올 때나 이번처럼 만족스럽지 않은 쇼핑으로 돈을 두 번 쓰고 나면,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소비자로 사는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세상 깐깐하고 스마트한 소비자인 척하지만 어쩐지 바보가 된 기분. 중요하지도 않은 부분에 형광펜 팍팍 긋는 학생이 된 기분이랄까. 상품 설명과 구매평과 판매 랭킹을 수차례 확인한들 나한테 맞지 않으면 땡이라는 것이 핵심 중의 핵심인데 말이다.


어차피 넘들에게 좋은 게 내게도 좋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그냥 마음 가는 걸로 사고 먹고 또 살아가는 게 정답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조만간 목이 짱짱한 반팔티를 구매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사라지자마자 순식간에 와우 여름이다! 를 외치게 될 테니 말이다. 귀찮아서 그냥 비싸고 질 좋은 것을 사고 싶지만, 반소매 티에 할애할 수 있는 비용은 정해져 있으므로 나는 또 피로해질 예정이다. 나는 무색무취로 그저 추잡하지만 않게 하고 다니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멋쟁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사는 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