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중순부터였으니 보름이 넘도록 습기에 잠식당하고 있다. 그렇다. 장마다. 한때 그 어원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당연히 ‘장’은 길 장長 일 테고, ‘마’는 뭘까. 비나 물을 뜻하는 한자 ‘마’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고, 일단 장마는 너무 싫으므로 마귀 마魔 일 것이라고 멋대로 갖다 붙였던 기억이 난다. 최근 우중충한 날씨가 길어지면서 원수의 정보를 파헤치는 것처럼 분노하며 장마의 뜻을 검색해 보았는데 예상외로 순우리말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표기상으로 장마는 한자가 아예 없는 순우리말 표현으로, 한자 ‘길 장’에 물의 옛말인 ‘마’가 더해져서 장마가 됐다는 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장마를 좋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마는 이곳 서귀포에 살게 되면서부터 ‘불호’를 넘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하필 이사와 처음 겪은 장마가 50일에 가까운 기간으로 1973년 이후 가장 길었기 때문이다.
서귀포의 장마는 실로 대단한 습기를 보인다. 아무리 장마라 해도 사나흘에 두어 시간쯤은 해가 쨍 나서 구석구석 좀 말려줄 법도 한데 기본 80~90%로 쭉 가는, 너무나 본격적인 고온다습의 시즌인 것이다.
고개를 들면 하늘색의 디폴트 값은 애쉬 그레이 정도랄까. 아침저녁은 조금 더 차콜쪽으로, 한낮엔 라이트 그레이로 살짝씩 바뀔 뿐이다. 여기에 분무기를 뿌리듯 흩날리는 안개비부터, 추적추적 땅을 흠뻑 적시는 비, ‘우산 써볼 테면 써 봐라. 팬티까지 적셔주마’ 하며 비웃듯 내리는 억수비까지 옵션들이 다양하게 적용된다. 어항 속 물고기 같은 서귀포 사람들은 털이 부슬부슬한 견종 비숑프리제나 화가 밥 로스 아저씨 같은 헤어 스타일을 한 채 적당한 비는 그냥 맞으며, 놀랍게도 헤엄치지 않고 걸어 다닌다.
서귀포에서의 첫 여름을 어마어마한 습기로 시작해 본 경험으로 유월이 다가오면 마음의 준비를 한다. 날씨에 좌지우지하는 인간이 되지 말자.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 등등. 올해도 장마가 길 것이라는 예보에 따라 아이와 내 장화도 마련해 두고 비가 많이 올 때 입을 반바지도 준비해 놓았다. 계획을 세워 할 일을 착착하고,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장마와 눈 안 마주치고 내 갈길 간다는 식의 마음의 준비를 하며 한 보름은 버텨왔는데 결국 한계에 다다르고 말았다. 자궁의 월례 행사까지 차마 준비하지 못했던 나는 축축한 공기 속에서 축축한 몸을 끌어안고 포효하고 말았다. 으아악! 겉축속축의 상태로 백기를 든 나는 잠깐 열심을 내려놓았다. 갑자기 서귀포에 사는 지인의 말이 생각났다. “이 시기엔 뭐 하려고 들면 안 돼. 그냥 있어야 해.”
몸도 마음도 눅눅한 채 앉아 있자니 아이가 젓가락을 흔들며 웃는다. “엄마, 이것 봐.” 바삭한 짠맛이 정체성인 조미김이 바삭을 잃고 짠해조류가 되어 나부낀다.
이토록 비실비실 힘을 쓰지 못하는 인간들과 다르게 푸른 것들은 더욱 신이 난다. 다소 자연 친화적인 환경에 살다 보니 자연이라는 게 신비한 한편 무섭게도 느껴진다. 특히 이 여름의 제주는 무엇이든 살아 숨 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소름이 돋도록 왕성하다. 온갖 풀과 나무, 벌레들... 얼마 전에는 집으로 들어가다가 타란튤라급 거미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이와 산책하다가 뱀 허물을 보는 일은 예사다. 겸손의 미덕을 기르고 싶다면 섬으로, 산속으로 들어가 살아보자. 온갖 멋지고 웅장한 생명체들이 자연스럽게 돌아다니는 세상에서 인간은 겉절이라는 것을 조용히 인정하게 될 것이다.
나의 제주 생활에서 이 긴 비는 고비다. 비가 그치면 바다로 풍덩 할 날들이 이어지고, 더위도 지고 나면 제주의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가을이 온다. 몸이 축축하면 마음도 축축해지기 때문에 명랑함을 애써 끌어올려 줄 것들을 찾는다. 방바닥에 누워 배 긁으며 볼만한 가벼운 만화를 빌리고, 청량한 보이 밴드의 노래를 찾아 듣기도 한다.
이 나이 먹도록 여전히 철은 없지만 사십 년 가까이 살면서 하나 아는 건 ‘지나간다’는 것이다. 때로는 지나가서 아픈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쑤욱 누군가를 자라게 하고 상처 난 부위에 딱지가 굳게 한다. 긴 마귀 말고 긴 물도 그럴 것이다. 습기에 부슬부슬 뜬 머리에는 맹렬한 햇빛이 내리쬘 것이요, 눅눅한 이불도 베개도 바싹 말릴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바삭해야 할 조미김이며 포테이토 칩도 정체성을 잃는 마당에 나라고 별수 있겠나. 비바람에 슬쩍 누운 풀잎처럼 나도 긴 비 사이에 살포시 널브러져 본다. 장마엔 꼿꼿함보다는 느적느적이 좀 더 어울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