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사랑받는다는 것

새해맞이 육아 결의문

by 잠전문가

"한때는 내적으로 부족함 없이 자라난 것이 작가가 될 깜냥이 못 되는 거라 생각해 부끄러웠던 시절도 있다. 세월을 거치면서 그 생각은 바뀌었다. 평탄한 성장기 속에서 받는 응원과 사랑, 무조건적인 지지가 몹시 드물고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그것이 한 인간에게 얼마나 큰 무기가 되는지, 세상을 겁 없이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주는지, 부모가 되고서야 깨닫는다." _ 소설 <아몬드> 작가의 말 중


소설 한 권을 맛있게 읽고 그만 덮으려는데 작가의 말 몇 줄이 내 눈길을 붙잡았다.

헉, 엄청난 자랑을 담백하게도 써놨군.

세상 그 누구보다 부러운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재물, 외모, 재능 그 어떤 것보다 부러운 '사랑'을 많이 가진 사람.


부모로부터 온전하고 공고한 사랑을 받으며 자란 사람은 흔치 않다. 대부분은 저마다의 결핍이 있고 상처가 있다. 나 역시 친구들과 술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말미에는 누가 더 힘들었나, 누가 더 상처 받았나 불행 배틀에 열을 올리며 깔깔거리기도 하지만 혼자 있을 때, 남편과 조용히 이야기할 때엔 평탄치 못했던 환경 속에서 생긴 크고 작은 상처들이 울컥하고 올라오는 날이 가끔 있다.

손원평 작가의 말처럼 부모가 되어보니 자식에게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지를 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것 같다. 그래서 더 온전히 사랑받으며 자란 사람이 부럽고, 내 아이에게 그런 사랑을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가끔 보면 꼬인 데 하나 없이 맑고 밝아 사람들을 모여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 만나서 이야기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인생이 살만하다 여겨지는... 그런 무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깊이 알고 지내다 보면 부모의 사랑과 지지를 넘치도록 받고 자란 부류가 많다.


사랑만큼 인풋 대비 아웃풋이 확실한 것이 있을까. 사랑받은 사람은 그 사랑을 흘려보낸다. 마음을 열어 상대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 나는 선천적으로도, 후천적으로도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한다. 인색한 사람, 물질적으로 베푸는 것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누군가를 그렇게 위하거나 애타게 여겨보지 못한 것 같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쓸 때도 여러 번 생각하고 계산한다. 그런 내가 너무 싫지만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다. 무언가 해주고 싶다 하다가도 지갑을 들여다보고 싼 것, 비싼 것 이리저리 검색을 해보고... 이삿날, 그 동네 이름을 기억해두었다가 자장면과 탕수육을 시켜주었던 친구가 생각난다. 비싼 음식도, 특별한 상황도 아니었지만 두고두고 기억이 난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위하는 사람들, 베풀고 싶어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돈보다 그런 마음이. 돈이 있다고 다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나는 그런 베풂에도 겨우 '갚는다'는 마음을 가지고 맞선물을 하며 여전히 옹색하게 살고 있을 뿐이다.


IMG_8366 (1).JPG 우리는 너에게 완전한 지지와 사랑을 주는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위의 작가의 말을 읽으며 우리 딸이 커서 저런 말을 한다면, 남에게 나눠주고 흘려보낼 만큼의 충분한 사랑과 행복을 품은 사람으로 자란다면 그것으로 내 육아는 온전한 성공일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를 키우며 내 손이 닿지 않는 일은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 도와줄 수 없는 일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의 '비빌 언덕'을 단단히 다져주는 일일 것이다.. 세상에 다치고 부러질 때 도망가고 위로받을 언덕 말이다.

부모가 줄 수 있는 최선의, 최고의 것은 유년기의 행복한 기억뿐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한 인간의 뿌리가 되는 그것. 깊고 튼튼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평탄한 성장기는 세상 일이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니 장담할 수 없지만, 무조건적인 응원과 사랑... 또한 음.. 장담할 수 없지만 최대한 노력해볼 일이다. 그래도 [좋은 생각] 같은 좋은 생각을 써 놓은(?) 책을 보면 왜, 그런 글들이 있지 않는가. 하다못해 식물도 좋은 음악과 "사랑해", "최고야" 같은 말을 들으면 윤이 나게 자란다고. 내 아이가 반들반들 윤이 나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 자식이 뿌듯하고, 부러웠으면 좋겠다.


하다 보니 감상이 흘러넘쳐 너무 기름진 것이 마치 지겹도록 부쳐먹다 못해 찌개에까지 넣어 먹는 전과 같구나... 에라 모르겠다. 새해에는 장황하고 그럴듯하며 뜬구름 잡는 결의가 제 맛이라 우겨보련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육아권태기에는 초음파 사진이 특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