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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Mar 06. 2019

그 엄마가 살찌는 이유

갖가지 합리화로 점철된 프로 축적러의 다이어트, 그 포문을 열며

작년,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로 5kg을 뺐다.

그리고 올해, 그중 3kg을 다시 회복했다.


오 망할.

타이어 같은 닭찌찌만을 하염없이 씹으며 뺀 살인데!

꼬륵거리는 배를 달래며 잠들던 수없던 밤을 기억한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응답하라 베둘레헴이여...!

(응답이 왔다.. "꼬르륵")


체중 증가의 원인은 가정보육이었다. (단호)

이사 온 후 어린이집에 도통 자리가 나지 않아 사 개월을 아이와 껌딱지처럼 붙어 지냈다. 모터 달린 듯 움직이고 흡입하듯 먹어치우는 성장기 아이와 함께하려면 에너지와 에너지 공급원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같이 삼시 세 끼와 두 번의 간식을 먹었다. 그뿐이랴. 겨울철 아이와의 나들이는 주로 뭘 먹으러 간다거나, 먹을 것을 사러 간다거나- 에 국한되어 맥도날드와 카페를 제 집같이 드나들었으니 양심이 있다면 쿠션 빵빵 옆구리를 마냥 탓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가 처음 깨우친 글자는 다름아닌  M이었다...


기껏 한 다이어트가 아까워 조금 조절을 해보려 했으나, 중간중간 에너지원을 채워주지 않으면 나의 뇌는 에러 메시지를 띄웠다. '삐빅- 당 떨어지고 있음. 곧 애가 과자 가루만 흘려도 샤우팅 할 것이 분명함, 띠리띠리'

...

그랬다. 아이가 배고프면 사달이 나는 아이라 유난히 배고픔에 민감한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유전이었구나!

무릎을 치며, 황급히 초코가 칠해진 비스킷을 입에 욱여넣었다.

왜 여유는 지갑에서 나오고, 친절함은 탄수화물에서 나온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위가 비면 세상 피곤하고 짜증이 났다.


그래, 아이와 함께 다이어트는 아니다. 밤이라도 자중하자, 했지만 밤마다 냉장고는 자기를 제발 열어달라고 우웅우웅거렸고 냉장칸의 맥주는 후광을 뽐내며 나를 시험했다. '한 모금이면 오늘의 스트레스는 쉬야로 간단히 내보낼 수 있다고. 어때?'

...

그랬다. 양은 많지 않았지만 가정보육을 하며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맥주를 들이켰다. 해외 어디 마트는 기저귀 코너 옆에 맥주를 진열해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것이야말로 참된 마케팅이로구나! 또 무릎을 치며 맥주 광고 모델 못지않은 목울대를 뽐내며 보리수를 꿀떡였다.


요가하고 도너츠 구워먹는 육아 일상


본능에 충실한 4개월이 지나고, 아이는 드디어 엊그제부터 새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다.

육아를 이유로 먹던 지난 날을 청산하자. 요즘 핫하다는 간헐적 단식을 해볼까한다. 저녁을 일찍 먹고 다음 날 첫끼는 점심으로... 메뉴도 좀 가벼이하고.

간헐적 단식의 첫날, 아이 아침을 챙겨주며 흘리는 밥알이며 시금치를 무의식적으로 주워 먹었다. 장난치고 이리 앉았다 저리 앉았다 하는 아이를 보며 생각한다.

'엄마가 잘 먹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데...'

화낼 때, 다리 떨 때는 생각도 못했던 '부모의 거울'이 이럴 때 떠오르는 건 왜일까.


나에게 육아와 다이어트는 동시 진행이 몹시 어려운 분야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많이 먹는 편이 아니라 살 걱정을 해본 적이 별로 없는데, 이제는 별달리 맛있지 않아도 일단 먹어서 여유와 친절의 곳간을 채우는 프로 축적러가 되어버렸다.

쨌든 11시가 넘었으니 간헐적 단식 첫 날도 반은 성공이다.

위기는 역시나 아이의 귀환과 함께 올 것이다.

오늘 아이는 도너츠를 만들고 싶다며 등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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