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잠전문가 Mar 12. 2019

버럭과 자책의 늪에서

가끔 개인의 기질은 일종의 자연재해 같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끔 개인의 성격(단점)은 일종의 자연재해 같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만 노력을 다해도 자연의 섭리로 만들어진 내 기질이 그 노력들을 우습게 부수어 버리는 것,

평소 '원래 그렇다'거나 '부모탓'이라는 말을 몹시도 비겁하다 여기지만 정말 이건 원래 그렇고, 유전적인 기질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강력한 그것...


아이는 아침부터 캠핑 놀이하자, 블록 놀이하자, TV 하나만 보고 씻겠다 하며 등원 준비를 미루고 있었다. 새 어린이집에 적응 중인 신학기라 웬만하면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고 기분 좋게 아침을 보내려 했지만... 놀이의 마무리는 종종 강제 중단과 눈물로 끝이 난다. 


블록을 던지듯 거칠게 통에 집어넣었다. 엄마 왜 저러지, 하며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 이게 아닌데... 이러면 안 되는데...'

마음속엔 이미 비상등이 깜빡였지만 몸은 이미 화가 나 들썩들썩, 콧구멍에선 분노의 콧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버럭의 현장을 한바탕 치르고 나면, 아이가 사랑하는 내 마음을 몰라줄까 겁이 날 때가 있다.  


요즘 아이가 화를 참지 못하고 집어던지거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 화가 났다고 말로 해달라, 화내면 기분만 더 안 좋지 해결되는 일은 없다, 소리 지르는 것 아니다 따위의 (화나면 들리지도 않을) 뻔한 이야기를 덤덤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그 모습을 보는 것이 몹시 불편하고 견딜 수 없었다. 


그건 나를 보는 것 같아서였다. 

광화문에서 일산 집으로 퇴근하던 어느 추석 연휴 전날, 두 시간 반이 걸려 집에 도착한 나는 방문을 닫고 가구를 뻥뻥 차고 울며 미친 말처럼 나부꼈다.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있었겠지만 지금 떠올려도 정말 황당하다. 뭐가 됐든 그때는 짜증을 고스란히 안느니 아픈 게 나았다. 이건 아주 찌질하고 드러운, 가족들만 아는 나의 성격이다. 

남자 친구 (지금의 남편)가 화이트데이에 줬던 초콜릿을 가족들이 조금 먹은 것을 발견했을 땐 성질 성질을 내며 남은 초콜릿을 싱크대에 냅다 버렸던 기억이 난다. 생리주기에 몹시 민감한 호르몬의 노예이고, 마침 때가 그 때였다지만 글로 쓰자니 진짜 또라이..이런 또라이가 있나 싶다. 어쩌겠나. 이게 나인걸. 


이게 나 혼자의 문제라면 참 좋을 것을. 내 방에 처박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지랄을 하든 오열을 하든 그건 내 몫이다. 위기의 순간, 잠깐 나만의 시간이 주어지면 좋겠다만 육아는 '얄짤'이 없다. 엄마의 배출시간(?) 약 몇 분도 봐주지 않고 화장실 문틈으로 영롱한 눈빛을 보내는 아이가 잠깐의 홀로일 시간을 허락할 리 없다. 참고, 또 참아보지만 결국 열에 한 번은 터지고 마는 것이다. 


블록을 거칠게 정리하며 최대한 화를 누르고 원하는 TV 프로그램을 틀어주고 안방에 들어갔다. 정신이 번쩍 나게 꿀밤을 때리며 거울의 나를 보고 말했다. '정신 차려 이 년아!'


육아서를 보면 원부모와의 관계, 원부모에게 받은 상처에 대한 이야기가 빠짐없이 나온다. 아이를 키우며 생각하지 않을 수 없던 내 부모의 모습들, 싫었던 기억들... 아이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지 않아 뼈를 깎듯 참고, 조금이라도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낸 날엔 남편과 술잔을 기울이며 울기도 한다. 아버지가 갑작스레 내지르던 고함과 거친 말들, 도마 위의 생선처럼 팔딱이던 나의 작은 심장을 기억한다. 튀어나올 것 같던 심장소리, 그 작은 가슴을 안아주고 싶다. 그리고 내 아이는 부디 티끌만큼이라도 그런 기억이 없기를 바란다. 


아직은 낯선 어린이집 앞에서 결국 울음을 터뜨린 아이는 선생님 손을 잡고 들어가고, 아이의 울음소리를 뒤로 한채 걷는 나는 바닥으로 침잠했다. 오늘도 나는 나에게 졌구나. 나도 어쩔 수 없는 대자연의 섭리 같은 나만의 기질, '욱'에 졌구나. 


다행히도 다정하고 낙천적인 남편과 귀여운 아이가 있어 이 침잠은 오래가지 않지만 가끔 이렇게 나를 뒤흔든다. 내 속의 대자연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 종종 나를 쥐고 흔들겠지만 두고 봐라, 나도 계속 개길 것이다. 마음을 다잡고 내 안의 사랑에 더 기대며 적어도 아이가 엄마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 노력했다는 것을 알아줄 때까지. 오늘도 이렇게 분노의 콧김과 지랄발광, 무기력한 침잠 삼종세트에 잠시 오전을 내주고야 말았다. 밥 꼭꼭 씹어먹고 아이가 오기 전까지 사랑과 오래 참음의 에너지를 열심히 채워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 엄마가 살찌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