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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Mar 21. 2019

아이가 웃으며 들어갔다

새로 입소한 어린이집 등원 3주 차 목요일.

드디어 아이가 웃으며 들어갔다.


웃으며 빠이빠이-
아, 얼마나 꿈에 그리던 모습이었는지.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등원 첫 주는 오랜만의 사회생활(?) 시작이라는 설렘으로 얼결에 잘 다녔지만 주말을 지내고 나니 새로움에 붕-떴던 마음은 가라앉고 낯설고 어색한 환경이 현실로 다가왔는지 아침마다 눈물바다였다.


"친구들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흑) 유라, 의찬이, 채연이, 서연이, 윤호(전 어린이집 친구들)처럼 금방 친해지지가 않아(흐어엉)"

"엄마, 나는 아침이 안 왔으면 좋겠어. 엄마 보고 싶어서. 맨날 맨날 밤이었으면 좋겠어."

평소처럼 꽥하고 심술을 냈다면 차라리 마음이 편했을 텐데, 저리 세상 처연하게 말하며 훌쩍이니 두고 돌아서는 마음은 돌덩이가 얹힌 듯 무거웠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작'을 만날지..! 너의 모든 시작을 응원해.


"엄마도 그랬어, 엄마도 처음에는 어색하고 부끄러워서 배가 아팠어. 모든 일은 시간이 필요해. 친해지는 것도, 익숙해지는 것도 시간이 필요한 일이란다."


작은 돌담길 아래 훌쩍이는 아이를 앉히고 이야기했다.

피카츄 모양으로 손질된 어느 집 마당의 나무를 보며 크게 깔깔 웃기도 했고, 어느 날은 노래를 부르기도 했지만 어린이집이 보이면... 역시나 오토 크라잉이었다. 아이의 작은 등엔 아직 길이 덜 든 빳빳한 새 가방이 멋쩍게 매달려 있었다.


오늘따라 여러 번 돌담길 아래 앉자고 했다. 한 번은 앉아서 오늘 날씨가 좋으니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실컷 놀겠구나- 하는 이야기, 한 번은 엄마도 너도 씩씩해지자는 이야기, 고양이 나무 보러 가자는 이야기... 멈춰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 오늘도 쉽지 않겠다, 마음 단단히 먹고 어린이집에 들여보내는데 히히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더니 제 발로 들어가는 것 아닌가?


몹시도 원했던 장면이었지만 기대도 안 하다가 실제로 일어나니 눈을 비비며 이게 꿈이여 생시여 하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돌아서는 내 후드티 끈을 줄넘기처럼 길게 잡아당기며 울던 너, 등 뒤에서 박진영 열창하는 표정으로 날 떠나지 마 오열하던 네가 드디어...!


아이는 쿨하게 들어갔고, 그걸 바라던 내가 외려 미련 많은 구여친처럼 기둥 구석에 숨어 아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았다. 아이가 웃으며 들어가기까지 낯선 곳으로 향하던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적응하느라 고생하는 마음이 짠해 괜스레 울컥했다.


남편에게 아이가 웃으며 들어갔다고, 괜히 눈물 날 것 같다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답장이 왔다.

"다음 주 월요일엔 또 울 수도 있으니까 눈물은 넣어둬."

아, 내 감성을 파괴하러 온 나의 배우자.

덕분에 앞으로 최소 몇 번은 더 있을 눈물 젖은 등원 길을 예상하며 정신을 차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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