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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Mar 25. 2019

오징어가 없다고 울었다

오징어가 망쳐버린 토요일 아침

오징어가 없다고 울었다.


거실 한 켠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금가루라도 된 듯 반짝이는 주말 아침이었다.

토요일 아침. 주말 아침. 휴일의 아침.

듣기만 해도 은혜로운 이 단어를 되뇌기도 전에 우리 집 꼬마 락커가 인두강과 비강을 뚫는 고음으로 시원스레 "오징어!"를 외치며 거실의 고요를 깼다.


요는 이러했다. 본인 인생 경험상(약 4년 미만) 부침개엔 오징어가 빠져서는 안 될 일인데, 아빠가 어묵 야채전을 해놓았으니 노라조가 고등어 외치듯 오징어를 외치고 만 것이다. 정성스레 식탁을 차린 아빠는 황당, 샤우팅이라면 지지 않는 엄마는 갑작스러운 선공격에 당황해버리고 말았다.


"이따 저녁에 오징어 넣고 무지개(아이는 부침개를 무지개라 칭함) 해줄게. 지금은 그냥 먹자."

"네가 좋아하는 오징어가 없어서 화가 났구나."

"다른 거 뭐 먹을까?"

육아서에서는 일단 아이 감정에 공감, 차선책을 찾으라고들 하길래 코칭대로 공감을 우선으로 회유와 설득을 해보려 했으나 꼬마 락커의 목표는 오직 신기록 달성이라는 듯 초고음역 샤우팅을 이어갈 뿐이었다.


이런 오징어같은 오징어!! 망할 오징어!!


소통이 공감을, 공감이 희망을 낳는다지만 불통 락커의 '내 목소리보다 더 큰 소리는 용납할 수 없다'며 '눈 안 뜨고 울기' 권법  앞에서는 그 무엇도 무용지물이었다. 이도 저도 싫다는 아이의 떼에 결국 '싫으면 말아라'로 마무리되었지만 점심을 먹기 전까지 색종이를 자르며, 풀칠을 하며, 블럭놀이를 하며 쌓여가는 허기 및 분노와 함께 음역대도 점점 높아만 갔다.


평소 보이는 행동이 아닌데 그날따라 유별났다. 이 와중에 봄꽃을 보러 다녀오는 길, 외출해서도 미혼 커플들의 절레절레를 유발할 뻔했던 위험한 짐승은 차 안에서 잠이 들었고 우리는 오늘 정말 이상한 날이라며 소곤거렸다. 아이는 차 안에서 오래 잤고, 집에 와서도 한참을 안겨 단잠을 잤다.


잠에서 깬 아이는 별 것 아닌 일에 티 없이 웃었고, 장난을 치며 데굴데굴 굴렀다. 종일 곤두서 있던 우리는 하, 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오징어의 오도 잊은 채 구운 돼지고기를 맛있게 먹었으며, 종일 울고 불고 신경전을 벌인 것에 비해 비교적 다정한 저녁을 보냈고, 웃으며 잠들었다.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았거나 알게 모르게 신학기의 피로가 쬐만한 어깨에 무겁게도 쌓여 있었던 것 같다. 낮동안 훈육을 하네 마네 남편과 이야기 했지만 때로 큰 폭풍은 잠잠해지기를 조용히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이 성난 파도가 앞으로 몇 차례나 내 노화와 홧병을 앞당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전은 응당 오징어 전인데, 오징어가 없어 화가 나는 꼬마 락커와 함께 이렇게 또 한 번 사는 법을 배운다.


잠들기 전, 남편은 피데기(반건조오징어)를 주문해야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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