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나이대로 흘러가는 의식의 흐름
하원한 아이와 어린이집 앞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쿵-하는 소리와 함께 누가 울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놀이터 기구에 머리를 찧은 듯한 아이에게 달려가 외쳤다.
"괜찮아?! 아야 안 했어?!!"
옆에서 놀던 애들이 말했다. "아줌마 얘 초딩인데요."
"어? 어.. 그래. 괜찮니?"
예전에 라디오에선가 어떤 워킹맘이 직장 상사에게 "과장님 맘마 드셨어요?" 했다는 사연이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났다. 왠지 길가다 넘어지신 할머니를 목격해도 "아야 안 하셨어요?!" 할 것 같은 나의 무의식 속 육아 언어에 나도 모르게 민망할 때가 있다. 아이가 자람에 따라 점점 바뀌어 가겠지만. (안 바뀌면 큰 일)
일곱 살 아이 엄마가 되면 나는 '아야'라는 말은 좀처럼 쓰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나는 세 살에서 네 살 엄마로, 네 살에서 다섯 살 엄마로 아이와 함께 자라고 있다. 사용하는 단어와 주로 하는 고민도 아이가 자람에 따라 점점 바뀌어 간다. 거칠 것 없이 자라고 달라지는 아이를 대견하고 뿌듯해하면서. 아주 잠시 머무는 아기 같은 모습에 아쉬워하면서.
아기 때 '조물조물'이라 부르던 것을 이제는 '클레이'라고 부르는 것도, 까르르 넘어가던 간단한 눈속임 장난에 시시한 듯 웃는 것도 때로 서운한 엄마의 마음을 너는 알까? 오늘을 그리워할 내일을 알기에 벌써 마음이 찌릿하다.
"마음이 찌릿하다는 게 뭐야?" 언젠가 아이가 물어본다면 "마음이 아주 조금 아야하기도 하고 이상한 기분이 드는거야." 하고 말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