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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May 13. 2019

따뜻한 청진기와 작은 시럽잔

"아기 엄마 여기 앉아요!"

백일이 채 안되었던 아이를 안고 병원을 가던 만원 버스에서 나를 애타게 부르던 아주머니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아기 엄마라는 어색한 호칭에 어색하게 웃으며 꾸벅 인사하며 앉았던 날이 있었다. 


지난 주말, 오전 진료로 바쁘던 동네 내과 원장님이 열심히 청진기를 감싸 쥐셨다. 따뜻해진 청진기는 아이의 뽀얗고 둥근 배에 닿아 열심히 오르내리며 숨소리를 들려주었다. 숨소리는 괜찮다며 허허 웃는 선생님 말씀에 아이도 나도 웃었다. 


아이를 데리고 카페에 간 어느 날, 케이크 한 조각과 커피 두 잔을 시켰는데 작은 시럽잔에 우유가 담겨 나왔다. 우유가 담긴 아주 작은 컵으로 건배하며 아이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이와 함께 산다는 것은 많은 것을 포기하게 한다. 

오래 걸을 수도, 조용하게 있을 수도, 늦게까지 잘 수도, 마음 편히 쉴 수도 없다. 


노키즈존, 경력단절, 육아 우울증, 학대...

아이들이 종종 '불편함' 또는 '걸림돌'의 이미지로 떠오르는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자주 팍팍하고 때로 서운하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살다 보면 고마운 일도 참 많다. 

승객이 없던 어느 날 우리를 목적지까지 내려다 주신 버스 기사님이 있었고, 울고 있는 아이에게 구급키트를 가지고 뛰어와 주신 사장님이 있었다. 엄마와 아가 모습이 예쁘다고 선뜻 사진을 찍어준 분도, 급히 기저귀를 빌려준 아기 엄마도 있었다.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있으면 이곳저곳에서 민들레 홀씨처럼 따뜻함이 날아든다.

혼자였다면 경험해볼 수 없었을, 그런 배려들은 두둥실 떠올라 마음에 꽃을 피운다. 

딱딱한 나의 마음을 살며시 무너뜨린다. 천진한 아이가 세상을 마음 놓고 사랑하게 만든다. 


한 방울 물감처럼 번지는 따뜻한 마음에 엄마로 사는 게 꽤 괜찮은 경험이구나, 하며 아이 머리 한 번 더 쓰다듬어본다. 다 너 덕분이야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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