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잠전문가 Feb 16. 2019

엄마도 살고 ‘볼 일’이다

어쩐지 의뭉스러운 엄마의 볼일

나갈 채비를 하는데 아이가 어디 가냐 묻는다.

그래, 드디어 '어디갈 수 있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월화수목금의 돌봄 노동은 잠시 접어둘 수 있는 구원의 주말이 애엄마에게 도달하고야 만 것이다.

소리 벗고 팬티 질러! 예이!


"응~ 엄마 볼 일이 있어서."


볼. 일.

아이는 아직 '볼 일'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모른다. 그렇다. 도대체 뭘 본 다는 건지 저 순진한 눈망울은 엄마의 아리송한 외출에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다.


그래, 엄마도 볼 일이 있다.

책 볼 일. (집에서도 물론 볼 순 있다. 아이가 똥 쌀 때. 잘 때.)

커피 마실 일. (집에서도 물론 마실 수 있다. 입 말고 코로.)

화장실 볼 일. (집에서도 물론 본다. 문 사이로 수치를 모르는 눈동자를 마주한 채, 수치스럽게.)


정확히 말하면 엄마의 '볼 일'은 좀 더 사람답게 뭐든 볼 수 있는 일인 것이다.

너무 재미있는데도 낮엔 아이의 방해로, 밤엔 미친 졸음의 습격으로 마음처럼 '읽어치울 수' 없던 책을 가방에 넣는다. 파괴의 제왕, 우리 집 꼬맹이가 활동하는 낮에는 곱게 접혀 책 인양 숨어있던 노트북도 챙긴다. 홀로 걷는 발걸음에 경쾌함을 더해 줄 이어폰도 물론이다.


애엄마에게 혼커는 그야말로 (정신적) 풍요가 아닐쏘냐!


혼커의 정석은 체인 카페 아니겠는가. 익명의 A-28 손님이 되어 주문한 음료를 받는다.

책을 펼쳐 커피와 함께 찰칵!

몇 시간의 자유부인을 선사해준 남편에게 사랑을 담아 허세샷을 날린다. 남편은 뿌듯함과 주말 독박육아의 피곤을 동시에 표하며 "ㅋㅋㅋ"의 답장을 보내왔다. 


대낮의 산뜻한 체력으로 마주하는 책은 달고, 커피는 따뜻하다. 음악에 발가락은 둠칫 둠칫 춤을 추고... 이토록 쉽고 빠른 풍요의 입문이라니.


어젯밤 남편과 술잔을 기울이며 아이와 종일 부대끼며 울고 웃을 날들도 많이 남지 않았다고, 추억하면 행복할 거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그렇긴 하지만 행복은 행복이고, 엄마도 숨 돌릴 구멍은 있어야 한다. 사람답게 볼 일을 볼 시간.


다가오는 주말에도 나는 나만의 숨구멍에 들어가 고요히 볼 일을 볼 것이다.

엄마의 시계를 잠시 덮어두고 나만의 풍요를 즐길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를 가득 채워야 나는 또 아이를 '빈껍데기'가 아닌 엄마로 빈틈없이 안아줄 수 있다. 이토록 평범하고 귀한 시간이 달고 느긋하게 채워지며 초저녁을 향해 간다. 다시 아이를 마주하러 갈 시간. 아이를 안아주며 나는 또 말할 것이다.

"엄마 볼 일 잘 보고 왔어."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 인간은 모두 강해야 하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